-재미있는 세상이야기-
치기분분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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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분분했던 시절
  • 안산뉴스
  • 승인 2019.07.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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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그리고 수업이 파하면 전집에 들어가 파전에 막걸리를 놓고 잡담을 시작하는데 그럴 경우 99% 개똥철학으로 이어져 판이 커지게 마련이었다. 막걸리는 주전자에 담아 시키고 굵은 대파를 듬성듬성 썰어 석화에다 척척 버무려 부친 보름달만한 밀가루파전을 두 장 시키는데 파전은 당시 가난하고 배고팠던 우리들이 즐겨 먹던 안주이자 군것질이며 저녁식사였다.

그곳의 주전자는 벗겨지다 만 노란색에 땟국이 꾀제제 흘렀고 주인아주머니 웃음소리는 너무 정겨웠다. 찾아가지 않은 학생증이 수북이 쌓여 있던 그 파전집도 이제 기억 속에만 있다.

또 가끔씩은 돌체 다방에서 엽차에다 ‘다방커피’ 놓고 반나절 정도 조안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나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들었는데 그땐 어딜 가나 온통 조용필 판이었다. 솔밭 사이는 ‘새들이 노래하는 이른 봄날’로 시작하여 ‘포도주가 익을 무렵 돌아온다던 그는 죽고 사람들은 무덤가에 야생화를 심었다’로 이어가는 노래, 우리가 교문 앞에 질펀히 앉거나 시위할 때 젊은이들의 의식·시각·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미모의 지성 가수 조안 샨도스 바에즈는 반전·평화·저항 등 시대의 메시지를 노랫말에 담아 전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굴다리 밑 파전집이나 다방에서는 우리보다 윗세대 선배들과 늘 함께 했는데 그런 자리에서도 친구와 나는 기죽지 않고 ‘빤드시’ 견해를 피력했으며 튀는 발언으로 주위를 끌곤 했다. 그러는 사이 선배나 친구들과 사귀고 이야기를 교환하면서 나 못지않게 타인, 현재들로 구성되는 미래, 침묵과 외침, 멈춤에서 멈춰서는 안될 변화라는 화두에 천착하며 점점 어른화되어 갔다. 그런 치기분분하게 보내던 학창 무대의 4막이나 5막쯤은 늘 불쾌했고 가끔씩은 구토였으니 분명 젊음의 멋이었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어린 것들이 가당찮은 생각을 한 것도 같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과 인간에 대해 온전한 성찰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때 배우고 넓힌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역시 성장 못지않게 다듬는 것도 많았어야 할 학창 시절에 정교히 걸러지지 않은 채로 숨어들어간 사고가 자주 독선으로 추심되는 것은 후회되는 대목이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친구와 함께 보냈던 대학 캠퍼스 풍경을 2019년 여름으로 잠시 소환해본다. 그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까마득한 ‘호랑이 담배 피던’ 때이지만 그 무렵 우리 세대는 1980년 직후 뜻밖에 5.18을 만났으며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6월 항쟁이라는 변곡점을 눈앞에서 지켜봤으니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달려오는 격정한 물줄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물론 2000년대를 지나, 그리고 적잖은 세월이 흐른 작금까지 오면서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안타까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국민소득 3만불을 열었으며, 지난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등 조국 대한민국은 지칠 줄 모르는 질곡과 변화를 보이지만, 그것은 잠시 놔두고라도 당시 우리 청년들이 서 있던 물줄기는 혹시, 그보다 훨씬 이전 일제 식민지에 이어 해방과 전쟁 그리고 4.19와 10월유신의 계절을 뚫고 오면서 대한민국이 삭풍한설에 얼마나 살 에이게 부딪쳐왔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또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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