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마을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 안산뉴스
  • 승인 2020.01.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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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철학 속에는 일관된 가치관이나 신념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성찰과 세계관도 담겨 있다. 고로 깊이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일관된 철학이 없으면 나침반 없이 떠도는 것과 같다. 뚜렷한 주관이 없으니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설령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성과를 만들었다 해도 단발적인 행사로 끝나기 십상이다.

마을은 특히 그렇다. 단기적으로 잘 포장하여 공모사업을 비롯한 예산을 따낼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속가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철학에는 그 생각의 중심에 따뜻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본질에 대한 고민이 담겨야 하고, 방향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도 있어야 한다. 마을 안에서의 공동체적인 가치는 학문이나 이론이 아니라 열심히 활동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방향성을 갖는 것이자 협력 속에서 답을 찾고 소통으로 길을 만드는 것이다.

거창한 종교나 인류의 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대인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물음과 대답, 토론과 반론을 거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다듬어진 논제가 생겼고 관심에 이끌려 졸지에 철학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왕 철학하는 김에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지 방법을 찾던 중 마을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5년 전, 경기도는 따복(따뜻하고 복된) 공동체를 만들어 마을공동체를 지원했는데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역 내 관계망을 활성화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이다.

우리사회는 세대 간 단절, 소외되는 취약계층, 무관심과 이기주의, 주거 및 일자리 불안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부처에 담당 부서도 만들었다.

그렇게 체계를 만들고 경험이 쌓일 즈음 최근, 위탁하는 법인도 바뀌고 명칭도 달라졌으며 소중한 일터에서 여러 명의 직원이 해고됐는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기도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헌신하던 사람들을 거리로 내 몰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역량을 가진 한사람의 직원을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할 품을 생각하면 아깝고 안타깝다.

지혜로운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 누군가는 결정하는 위치, 누군가는 떠나야 하는 위치가 됐으니 쫓겨나는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 부디 가치관이나 신념,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철학을 가지고 원만하게 해결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을에서 활동하다 보면 철학이 없는 다양한 외부의 이야기도 듣고 보게 된다. 마을 일을 마치 기술자의 작품처럼 꾸며서 설계하는 재주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고 서류를 기가 막히게 잘 써주는 공모사업 컨설턴트도 있다.

정이 가고 감흥 넘치는 마을은 안중에도 없고 주도권을 가지기 위한 민민 갈등도 예사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부의 갈등을 감추고 왜곡하기도 한다.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 경험이 없어도 인맥 찬스를 통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평가의 문제다. 적어도 대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평가할 만한 자격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요즘 많이 등장하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평가하면서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꿈이 무르익는 소리’라고 뜬구름 잡는 말을 한다.

기본적으로 발성이 어떻고 공명, 딕션(발음)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상식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소경이 소경 인도하는 격이다. 필자는 어찌어찌하다 마을을 업으로 삼으면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과 사례를 듣고 보고 있으며, 비판은 있으되 대안이 없고 말잔치뿐인 단체들도 많이 알고 있다.

한심하지만 그들이 판을 키워 가고 있고 지금 같은 패러다임이 지속된다면 마을도 난장판이 될지 모른다. 필자는 마을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세력들의 확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마을은 순수하게 활동하는 주민들의 철학이 반영되는 무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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