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5)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5)
  • 안산뉴스
  • 승인 2020.02.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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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尹絳) 선생 묘와 신도비(神道碑)

윤강(尹絳, 1597~1667)의 묘역은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7-2에 있다. 우산리 마을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승용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윤강의 신도비는 안산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윤강이 별세한 후 1680년(숙종 6)에 송시열이 비문을 지은 것을 1709년(숙종 35)에 아들 윤지인이 글을 써 세웠다. 비개(碑蓋) 181×108×87cm, 비신 270×111×48cm, 기대 186×126×59cm의 규모다.

비신의 높이가 270cm에 달하는 큰 규모에 속한다. 비개는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신의 우측 하단부 일부가 파괴되어 콘크리트로 붙여 놓았으나 현재는 안전을 위해 보강시설을 해 놓은 상태다.

비문이 마모되어 판독하기 힘들 것을 염려하여 작은 규모의 새로운 신도비를 옆에 하나 더 세웠다.

조선중기 문신인 윤강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공조참의 민헌(民獻)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됐다.

같은 해 봉교·정언·교리를 거쳐, 1642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정원승지가 되고 이조참의를 지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 대사헌, 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1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장양도감(殯葬兩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 판의금부사에 오르고 이조판서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인조·효종·현종 3조에 역사하여 80여 벼슬을 지내면서 신명을 바쳐 일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민유중(閔維重)의 탄핵으로 사퇴하여 안산(安山) 옛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모두 사퇴했다.

윤강의 아들 두포공(杜浦公) 윤지선(尹趾善)은 좌의정, 동산공(東山公) 윤지완(尹趾完)은 우의정을 지내 숙종임금 때 형제가 좌, 우의정 벼슬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윤강의 묘의 원래의 석물로는 상석과 망주석, 묘표가 있고, 근래에 향로석과 문인석, 장명등을 새로 세웠다.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내고장 안산’(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 1990)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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