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무서운 사람들
더 무서운 사람들
  • 안산뉴스
  • 승인 2020.02.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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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2016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부산행’에서, 석우(공유 역)와 그의 딸 수안, 임산부 성경과 남편 상화, 야구 선수 영국은 좀비들 사이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이들은 좀비들과 혈투를 벌이며 천신만고 끝에 열차의 반대편 비감염자들과 합류한다.

그런데 반대편에 있던 비감염자들은 석우 일행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겠냐며 매몰차게 이들을 다른 객차로 내쫓아 버린다. 이때 반대편에서 남자 친구 영국을 기다리고 있던 진희는 자신도 쫓겨나는 이들과 함께 다른 객차로 따라 넘어가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좀비들보다 이 사람들이 더 무서워!”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에 대한 사투의 역사였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전염병들과 함께 중세의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흑사병, 그리고 근세의 소호의 콜레라, 쿠바의 황열병, 뉴욕의 장티푸스, 스페인 독감은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또한 가까이는 1976년 자이르의 에볼라와 함께 지카 바이러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이 인류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류는 나름의 치료법을 개발하고 또 신체적인 면역체계를 갖추어 가면서 차근차근 전염병을 극복해 왔다. 분명 인류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전염병은 그 형태와 이름을 바꾸어서 인류를 공격해 올 것이고 또 인류는 그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종교인들의 망언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행태이다. 자연재해를 인간의 행위에 대한 신의 형벌로 인식하는 행위는 어쩌면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 대해 해석할 방법이 없었던 초기의 인류는 그 현상에 대해 신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의 세속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개입을 당연히 여기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뜻과 결부하여 해석하는 것을 강화해온 측면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일부 기독교 목사들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초기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이것이 중국 정부의 기독교 박해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었다.

그러다가 신천지 신도들에 의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이에 대해 언론의 보도가 연일 지속되자, 다시 이를 온 국민에게 이단 신천지의 정체를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신천지측에서는 이것이 신천지를 공격하기 위한 마귀의 소행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마귀의 소행이라고 하니, 우리 같은 우매한 시민들은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지 아니면 마귀에 대항해 싸워야 할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와중에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WHO에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바이러스를 굳이 ‘우한 폐렴’이라고 명명하며 이번 사태를 중국인들을 전면 통제하지 않은 정부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한 정치인은 ‘문제인 폐렴’이라는 팻말을 들고 선거 운동을 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리고 WTO에서는 급속히 가라앉는 경제 상황에 대비하여 선제적 재정 확장을 권고하였고, 대구를 중심으로 영세 상인들을 위한 추경 예산의 편성이 시급함에도 야당 대표는 이를 정치적 혈세 퍼주기로 규정하고 무작정 반대하기만 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재난을 이용하여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돈에 눈먼 장사치들,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희생자를 정죄하는 종교인들, 이런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이용하는 데 혈안이 된 정치인들의 잔인함과 이기심, 그리고 이들이 퍼트리는 혐오심이 더 무서운 질병이다.

이제 코로나19는 지역 감염을 넘어 어쩌면 대유행 단계로 진입하게 될는지 모른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희생양 만들기도 아니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혐오 마케팅도 아니다. 대신 고통받는 자들의 호흡에 우리의 호흡을 포개면서 동시에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와 함께 정부의 방역 대책을 신뢰하고 힘을 실어주며 바이러스 확산과 극복을 위해 함께 하는 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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