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디테일에 있습니다
행복도 디테일에 있습니다
  • 안산뉴스
  • 승인 2020.05.20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할 때, 추석날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무심한 남편, 치매 걸린 시어머니, 이기적인 딸과 철부지 아들을 건사하며 오직 가족을 위해 살던 인희는 어느 날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기 전날 남편 정철에게 이렇게 묻지요. 언제 내가 보고 싶을 것 같냐고. 이에 정철은 윗글처럼 대답합니다. 사소한 것이라 하찮게 여겼던 일상이 나를 건드릴 때마다, 그때마다 보고 싶을 것이라구요. 노혜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 장면 중 일부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 역시 그렇습니다. 행복도 디테일에 있습니다. 바로 남편 정철의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아내의 흔적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뻔히 눈앞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애써 눈여겨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막상 그리워서 보려고 하니 그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가 않네요. 이제 그것들은 별이 되어 추억의 하늘에 박혀 가녀린 빛을 발할 뿐입니다.

‘소중한 것’과 ‘귀중한 것’은 다르다고 합니다. 김소연은 그의 책 ‘마음사전’에서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 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 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는 의욕이 있는 한,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각자의 믿음만이 고개를 내민다. 각자의 자기 역할에 대한 믿음을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라고 착각하면서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인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제 결코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아이들은 새 학년이 되어서도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대신 온라인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날 뿐입니다. 부모는 말로만 듣던 재택근무와 화상 회의가 한순간에 실시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회식도 사라져 일찍들 집으로 퇴근합니다. 덕분에 갈라서는 부부가 많아졌다고도 하네요.

젊은이들에겐 일상이었던 온라인 쇼핑에 실물을 직접 보고 사는 것에 익숙했던 노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크 쓰기, 손 씻기가 습관이 되어 독감과 감기 환자가 줄어 이비인후과와 소아과 병원이 울상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대중교통 이용자가 대폭 줄어들었고, 미세먼지 소식도 들려오지 않네요. 또한 전쟁 중에도 중단되지 않았다던 종교계의 예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가 보이지 않던 우리 일상의 가치들을 의식의 전면에 부상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행복은 실상 사소한 것들에 있노라고요. 그래요. 이제 우리 찬찬히 둘러보기로 해요. 내 삶의 보이지 않던 소소한 일상의 존재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속삭여 주세요. “너는 참 소·중·해!”라구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