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말보다 행동으로 하겠습니다”
“화려한 말보다 행동으로 하겠습니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11.28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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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광 한국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장

 

주요프로필

-1984년 경기 안산 출생

-안산제일장례식장 대표이사

-안산시 체육회 이사

-나눔사업단 부단장

한국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국민운동 단체다. 대한민국 유일의 이념운동단체로 1954년 6월 출발한 자유총연맹은 일을 행함에 있어 모든 판단 기준은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국리민복’에 두고 있다.

시작은 반공단체로 출발했지만 현재 어느 정파의 노선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닌 ‘국민 행복과 국가 발전에 헌신’하는 비전을 갖고 봉사하고 있다.

64년 전통을 갖고 있는 자유총의 전국 최연소 지회장이 안산에서 나왔다. 박천광(34) 회장이 주인공이다. 박 회장은 자유총 출범 이후 30대 초반의 전국 최연소 회장이다.

젊음을 자산으로 삼아 현재에 충실하며 언제나 ‘처음처럼’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회원들과 함께 단체를 가꿔가겠다는 박 회장을 현장 인터뷰했다.

-자유총연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사회 진출 후 안산제일장례식장 이사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단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자유총 입문 당시만 해도 20대 중후반이었습니다. 자유총연맹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2012년부터 부회장을 맡아 봉사해왔습니다.

대한민국 3대 사회단체 중 하나인 자유총연맹의 부회장을 맡은 지도 햇수로 벌써 7년째입니다. 젊기도 했지만 이웃의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들과 어울려 활동을 해서인지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만 단체 내부의 문제로 안산시지회장 자리가 한동안 공석이어서 걱정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젊은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아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자유총연맹에서 어떤 봉사를 해 왔는지 궁금하다.

“자유총연맹이 봉사하는 모든 부분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부회장으로서 회장을 보좌하고 자유총 단체 내의 25개 동 분회 활동과 여성회, 어머니포순이봉사단, 지구촌재난구조단, 자유산악회 등의 봉사를 지원했습니다.

자유총 회원들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이후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철거가 이뤄질 때까지 4년이 넘도록 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보수단체 이미지가 많았던 자유총이 세월호 분향소에서 끝까지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도 됐습니다.”

-자유총연맹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유총연맹은 대한민국 대표 국민운동단체입니다. 시작은 반공단체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파의 노선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자유총은 일을 행함에 있어 모든 판단 기준을 ‘국리민복’에 둡니다.

모든 활동기준이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입니다. 단체 비전이 ‘국민 행복과 국가 발전에헌신하는 한국자유총연맹’입니다.

아직도 자유총이 반공연맹이나 안보단체로 생각하시는 것은 오해입니다. 중앙회에서 이미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고 이제는 봉사가 주목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유총연맹이 각 동별로 분회가 있을 정도로 조직이 막강하다.

“저는 안산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관내 25개 동 전역의 모든 선후배 고향이 안산이기도 합니다.

안산은 그동안 선배 어르신들이 8도에서 이주해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오셔서 서로가 이질감을 갖고 활동하셨겠지만 저희 세대는 모두가 안산이 고향입니다.

자유총에서 활동해 오신 선배 어르신 회원님들을 모시고 그 바탕 위에 지역 선후배가 합류할 경우 현재보다 봉사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청년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타 지역은 40대 이상이 주류인 반면 안산청년회는 혈기왕성한 20대부터 30대 위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현재보다 더 막강한 자유총 안산시지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의 3대 사회단체장을 맡게 됐다. 각오는.

“사회 경험도 짧고 나이도 어려서 회장이라는 직함 자체만으로도 건방지게 보여 질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회장직을 수년 동안 수행해왔지만 회장이라는 자리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주변에서 걱정 반, 우려 반이 있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회장을 맡은 만큼 화려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단체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젊은 나이에 사회단체장을 맡았다. 부담이 있을 텐데.

“나이가 젊다는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가겠습니다. 부족한 경험은 자문위원과 어르신 회원님들에게 지혜를 배우고 젊은 세대는 회원으로 영입한 후 힘을 합쳐 지역발전을 위해 더 봉사하고 더 눈에 띄게 봉사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자식 대하듯 보살펴 주시고 힘을 모아주시면 젊은 열정과 에너지로 힘차게 달릴 수 있습니다.”

-임기 중 추진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유총 안산시지회의 회장 임기가 한참 남았었는데 갑작스럽게 자리가 비어 회장을 맡게 돼 구체적이고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부회장을 맡다가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회장을 맡게 돼 자문위원은 물론 임원진과 회원들까지 여론을 수렴해 사업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회장 임기가 3년이므로 단체내의 각 동 분회와 여성회, 청년회가 단합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같은 단체 안에서 3개모임이 그동안 따로 따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함께 하는 단체로 가꿔 나가겠습니다.

자유총 활동 자체가 외부에 보여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원들 간의 결속을 다지는 화합이 우선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각에서 자유총연맹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은.

“자유총연맹이 1954년 6월 대한민국 유일의 이념단체로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반공단체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대한민국 대표 국민운동 단체일 뿐입니다.

현재 자유총의 모든 판단기준은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는 ‘국리민복’입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중앙회가 이미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고 남북화해무드 분위기가 조성중입니다.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회장을 맡는다니까 친구나 선후배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자유총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봉사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 단체가 아니라 봉사단체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제는 봉사가 주목적입니다.”

-자유총연맹 이외에 활동하는 단체가 있나.

“안산시 체육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3년째입니다. 개인적으로 축구 종목에 관심도 많고 취미도 축구인 만큼 체육 방면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민주평통과 축구협회 활동은 물론 제일장례식장에서 운영하는 나눔사업단 활동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나눔사업단은 부단장을 맡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시작한 나눔사업단은 그동안 매년 지역 학생들에게 교복나눔사업을 비롯 경로당에 쌀나눔 사랑도 해오고 있습니다.”

-제일장례식장을 경영하고 있다.

“아직 경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쑥스럽습니다. 제가 장례업을 전공해서 도전한 것도 아닙니다.

기회가 주어져서 장례업을 하고 있지만 항상 조문객 입장에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례업을 조문객 입장에서 바라보니 시야도 넓어지고 조문객과 상주 가족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우선임을 알게 됐습니다.

기존 관념을 벗어나 상주 가족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부모 장례를 불편함 없이 치르도록 도움을 드리고 조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갖추고 친절을 최우선으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직원복지도 중요함을 깨닫고 ‘벌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영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어떤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입니다. 저에게 ‘리더’라는 용어 자체가 사치입니다. ‘리더’라는 용어보다는 ‘활동가’라는 용어 선택이 어울리도록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자유총에 처음 입문해서 청년회를 꾸릴 때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렸습니다. 회원 분들이 모두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뻘이었습니다.

단체에서 활동하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었습니다.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이와 직책을 떠나 어느 조직에서도 화합할 줄 알고 소통할 줄 알면 좋은 활동가라는 평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생의 지침으로 삼는 좌우명은 무엇인가.

“‘처음처럼’입니다. 신영복 교수의 시 ‘처음처럼’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삽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익숙함에 속아서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가까워지면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일이나 사람관계나 없어진 다음에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가까운 곳부터 챙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살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상시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단상에 나서서 인사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평소에 소탈하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래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안산에서 태어나 안산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자영업을 하는 만큼 고향을 쉽사리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회사경영을 하던지,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지, 뭐든지 열심히 하는 ‘박천광’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나이가 들어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뿌듯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꿈은.

“젊은 ‘박천광’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 충실하자’가 꿈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현재 속에 살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신입니다. 소명을 갖고 살면서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아 부어야 성공은 물론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여깁니다. 그 뿐입니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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