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 안산뉴스
  • 승인 2020.09.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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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안산학연구원 학술연구센터 소장

최근 권력층의 빗나간 자식 사랑이 사회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특권층의 비리, 특혜에 대한 불공정이 그것이다. 현 정부 전·현직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및 병역비리 사건은 대한민국 부모와 청년을 허탈과 좌절로 내몰았다. 기회의 평등과 공정을 믿고 노력해온 20~30대 청년과 자신의 희생으로 자식의 미래를 담보하려 애썼던 50~60대의 현실은 망연자실 그 자체다. 희망은 노력의 강력한 동기이다. 설령 실수와 실패가 닥친다 해도 희망은 딛고 일어날 원동력이 된다. 만약 사회가 합리적이고 투명을 담보하지 못해, 부정과 불신이 만연하면 동력을 잃게 된다.

산업사회 변화 속 급성장한 대한민국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급급했다. 이에 인권과 공정·공평은 도외시 됐다. 1980년대 이를 자각한 청년 세력이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고 성공도 했다. 30년 후 그 세력이 이 시대 정권을 거머쥔 주체가 됐다. 민주화 운동 이후,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3세력인 시민단체로 이슈에 개입하며 대응 방안을 제시해왔고 정의로운 사회를 주창했다. 그런 그들이 그 가치가 실현될 실제적 권좌에 올랐다. 그것도 전임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몰고 말이다. 다수의 국민은 사뭇 기대도 했다. 민주화 운동에서 보여준 용기 있는 희생과 30여 년간 연마한 사회적 문제의식의 가치와 실현. 하지만 실망스럽게 그들도 과거의 권력자가 보여준 욕망과 본능적 속성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하고 말았다. 현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식에게 대물림하고자 엄마, 아빠 챤스를 과감히 사용했고 그에 따른 죄의식도 없다. 국민은 허탈감에 빠져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자신들이 주창해온 철학을 짓밟는다. 안쓰럽다. 국민은 이치와 상식으로 사건의 전말을 간파하고 있는데 이를 부정한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벗은 임금님 처럼’

현 정권의 권력은 과거 권력과 상이한 특성이 있음을 식자들은 지적한다. 과거 정부는 특혜의혹이 발생하면 이를 사과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국민을 우롱하는 궤변으로 억지를 부리며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인가. 아니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인간의 속성인가. 더욱 답답한 것은 이를 견제할 정당이나 세력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 정권에서 핍박받는 윤석열 검창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그리고 진중권 전 교수가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옛 고전에는 주제어로 자주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선함을 권하고 악함을 징계하다는 ‘권선징악’과 나쁜 행위에는 나쁜 결과가 초래한다는 ‘인과응보’이다. 최근 한 언론 칼럼에서 “이명박 잡은 건 친이였고, 박근혜 해친 건 친박이며, 친문도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지키고 싶다면 쓴 소리와 브레이크를 걸어 바로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정치는 애초 원시부족사회에서 부터 제한적 자원을 균형 있게 분배하기 위해 시작된 영역이다. 공평과 공정은 집단전체의 배가 순항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불평등은 불만과 분쟁의 단초라고 인식했음이다. 설령 권력층에 부정과 부패가 있다면 그에 응당한 처벌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순리다. 순리를 역행해 역풍이 닥친다. 조국, 추미애, 윤미향은 같은 함정에 빠져있다. 국민은 그들의 비리와 특혜 자체보다 궤변, 억지, 은폐, 오만에 분노한다. 어떻게 추미애 아들을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안중근의사 반열에 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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