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후배에게, 동료에게
제자에게, 후배에게, 동료에게
  • 안산뉴스
  • 승인 2018.12.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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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통학버스에 타면 선생 옆 자리는 마지막까지 비기 마련입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아직은 옆 자리에 앉는 학생에 괜스레 안도했었는데 어느덧 제 옆 자리 역시 비어 있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하굣길 홀로 앉은 통학버스 안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핸드폰을 바라보거나 창밖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옆에 앉습니다. 심지어 자리가 꽉 차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교수님~” 수줍게 웃는 학생은 졸업반 지도학생입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지도교수라고 의리를 지켜 옆에 앉은 모양입니다. 근황토크를 나누다말고 힘들다며 금새 눈물까지 글썽입니다. 하나의 직업에 매몰되기보다는 여러 일들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최근 실습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왔는데도 교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교사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예쁘긴 하지만 어느 날은 미웠고, 이런 마음으로 교사를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순간 저도 함께 눈물이 핑 돕니다. 이십년 전 똑같은 고민과 불안으로 졸업반을 겪고 있던 청년 김명하가 떠오르기도 했고, 이직의 문 앞에서, 진학의 문 앞에서, 교수임용의 문 앞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괴롭던 젊은 김명하가 떠올랐기 때문이겠지요.

“전국에 있는 졸업반 학생들 모두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일 거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 사회라는 새 장을 향해 딛는 첫 시도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불안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어. 친구들과 모여 하염없이 불안해하고, 확신 없이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가졌던 것 같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삶에서 확신을 갖고 한 일들은 참 적어. 확신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불안하고 힘들어 울고 갈등하면서 그 시간을 지났던 것 같아. 다만. 그럴 땐 혼자 울지 않고 친구랑도 함께 울고, 좋아하는 선생님께도 투정부리며 울고, 선배를 찾아다니며 어떻게 견뎠냐며 또 울었던 것 같아. 함께 울면 지나고 결국 견디게 되더라.”

이미 시간을 한참 지난 제 말이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그녀에게 얼마나 닿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함을 통과할 때 자신의 이야기로, 자신의 경험으로, 더 넓고 깊은 지식으로 힘을 주었던 스승, 선배들을 생각하며 적어도 꼰대의 이야기는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년이면 불혹도 중반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또 흔들립니다. 스물에는 서른이 되면, 서른에는 마흔이 되면 삶이 덜 흔들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흔을 훌쩍 넘긴 오늘도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네요.

어제는 학교 선생님들과의 독서모임이 있었습니다.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나 더 선생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런 모임, 이런 선후배, 이런 동료가 있으면 조금 더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물에게도, 서른에게도, 마흔에게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좌절하고 함께 격려하는 공간과 관계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서로 닮아간 제자들에게도, 여성으로서의 삶의 길을 함께 걷는 여성 후배들에게도, 타자의 삶에 관심 갖고 연대하며 함께 사는 일상을 꿈꾸는 동료들에게도 올 한 해 함께 울어주고, 함께 분노해 주고, 무엇보다 좌절의 순간에도 떠나지 않고 손 내밀어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에 닿으려고 노력한 당신에게서 받은 순간들을 당신 아닌, 또 다른 제자와 또 다른 후배와 또 다른 동료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낯선 곳에서 함께 연결될 또 다른 낯선 당신들도 설레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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