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같은 임금, 황희 같은 정승
세종 같은 임금, 황희 같은 정승
  • 여종승 기자
  • 승인 2020.12.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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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승 발행인 / 대표이사

조선시대 세종은 한글창제를 비롯 최초의 공중 해시계 ‘앙부일구’와 측우기, 물시계 발명 등 헤아릴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는 세종을 단순히 나라를 잘 다스렸던 군주나 책을 많이 읽었던 군주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종은 당시 국정 운영의 책임자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는다.

‘세종의 수성 리더십’에서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업적보다는 세종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종은 다양한 정책 대안을 놓고 신하들과 토론을 벌이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자기 통제력과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가 뛰어났고 숙의(熟議) 정책결정 방식과 실용외교 등의 리더십을 가졌다.

세종의 이 같은 리더십은 황희 같은 인재를 알아보면서 더욱 빛이 났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은 18년간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왕을 보필했다.

‘왕의 책사들’에 나오는 황희 정승은 만백성의 친구이자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알았다. 불의를 보면 상대가 누구든 참지 않았다.

황희는 아랫사람을 권위로 누르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까운 상대라고 무조건적인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그는 늘 원리원칙대로 행동했고 무엇이 진정 백성을 위한 일인지 생각한 후에 움직였다.

정승 황희는 술을 좋아하고 끊지 못하는 아들에게 손님 예우의 의미로 큰 절을 해서 술을 끊게 한 일화도 유명하다.

사람을 다룰 줄 알았던 황희는 늙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항상 한 쪽 눈을 번갈아가며 시력을 길러 잔글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세종이 가장 신임하는 재상이었고 사대부들에게는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이처럼 인재를 알아본 세종 같은 임금에 공평무사한 성품을 지닌 황희 같은 정승이 있었기에 조선의 태평성대가 있었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윤화섭 안산시장호가 출범한지 2년5개월이 지나가고 1년 7개월여가 남았다. 윤 시장의 임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산하기관장 대부분이 물러나고 새로운 기관장들이 입성했다. 일부 기관장은 현재 공개모집이 진행 중이다.

일부 산하기관의 경우 ‘직무정지’라는 갑론을박을 벌이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시장 비서실장도 정책특보로 자리를 이동했다. 공보관도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뀌었다.

산하기관과 단체의 간부급인 본부장과 사무국장 자리도 새로운 인재가 등용됐고 연임되기도 했다.

기존의 인재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가고 새 인물이 자리를 차지했다. 윤 시장의 후반기 시정을 새롭게 끌고 갈 인재들이다.

지방자치는 돌고 돈다. 선출직인 시장 자리와 산하기관장, 본부장, 사무국장 자리도 돌고 돈다. 세종 같은 시장과 황희 같은 정승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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