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창업자의 수천억 기부가 씁쓸한 이유
‘배민’ 창업자의 수천억 기부가 씁쓸한 이유
  • 안산뉴스
  • 승인 2021.02.23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윤유진

얼마 전 ‘배달의 민족’ 창업자가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자산이 1조원이 넘어야 가입할 수 있는 억만장자 기부클럽에 그가 한국인 최초로 가입해 기부서약을 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던 엄마는 혀를 차며 말했다. “배달원들 배달비나 올려주지. 고생은 누가 하고 선심은 저기서 쓰네.”

코로나 시대, ‘배민’ 외에도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호재를 누리고 있다. 쿠팡은 작년 매출이 전년대비 90%나 증가했고 기업 가치를 30~50조원으로 평가받으며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상장이 되면 경영주와 주주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을 것이다.

플랫폼 소유주들이 이렇게 큰 수익을 쌓는 동안 실제로 일을 해서 서비스를 굴러가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배달 라이더들은 고정된 월급도 없이 1분마다 변하는 건당 배달수수료를 받으며 일한다. 평가 등급에서 밀리면 라이더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배달건수를 무리해서 소화한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대부분 개인책임이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무조건을 바꿔도 ‘노동자가 아니라서’ 법적 보호도 못 받는다. 19~24세 산재사망자의 40%가 배달 라이더다.

물류센터는 어떨까. 추위와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시간당 생산량’을 평가받으며 쉴 새 없이 물건을 옮겨야 한다. 얼마 전 산재가 인정된 故 장덕준씨는 쿠팡에서 일하는 1년 동안 몸무게가 15kg나 줄고 근육이 녹아내릴 정도로 일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류센터의 살인적인 노동은 27세의 청년을 과로사하게 만들었다.

이뿐이랴. 플랫폼 기업들은 파트너인 소상공인들에게도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배민은 작년 3월 입점업체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리려고 했다가 소비자 반발로 철회한 적이 있고, ‘로켓배송’을 자랑하는 쿠팡은 판매대금을 두 달이나 늑장 정산하며 경영이익을 얻고 있다.

그런데 과연, 수십만 명의 배달 라이더들이 없었대도 배민 창업자가 1조원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을까? 수만 명의 물류 노동자들과 거래처가 없었대도 쿠팡 대표가 1조원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을까?

어떤 개인도 사회 공동의 노력 없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배민과 쿠팡 기업주가 쌓은 부는 배달라이더, 물류노동자, 입점업체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쌓인 것이고, 그들의 희생 위에 쌓은 것이다. 그러니 배민과 쿠팡이 얻은 이익은 마땅히 서비스를 굴러가게 하는 사람들(배달라이더, 물류노동자, 입점업체 등)에게 제대로 분배되어야 한다.

기부하겠다는 개인의 선의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의 사회 환원을 개인의 선심에 기대야만 하는 지금의 사회 구조는 나쁘다. 잘못되었다. 배민 창업자의 기부 뉴스를 들은 우리의 기분이 씁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인의 선심이 아닌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부’가 분배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난 19일 영국은 차량공유 플랫폼 ‘우버’ 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냈고, 이에 따라 영국의 우버 기사들은 최저임금과 휴일수당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에서 도입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유세’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서민들이 몰락하고 최상위 부자들은 오히려 자산이 증가했다. 부유세는 부자들의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과세해서 세수를 확대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이다.

지난 15일 별세하신 ‘시대의 스승’ 백기완 선생께서는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었다. 노나메기란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뜻한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남은 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바르게 보고, 함께 힘 모아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어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