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안 보이는 주민자치회(3)
길이 안 보이는 주민자치회(3)
  • 안산뉴스
  • 승인 2021.03.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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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내년, 25개 전동에 주민자치회를 실시하겠다는 안산시가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누이 언급했듯 참여하는 위원들의 역량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체계를 세우지 못하면 갈등과 분열로 날을 보내게 될 것이 자명하고 그 사례들은 넘쳐난다. 권한과 예산을 대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 확고한 규칙이나 엄격한 투명성이 요구되며 적어도 주민자치회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투자하고,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마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친목 모임 정도의 멤버십이나, 적당히 자리를 채우고 시간을 보내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려거든 부끄러운 줄 알고 빠져 주기시를 권면한다. 행정과 정치권은 지속 가능한 좋은 교육을 만들어내고, 제도의 안착을 위해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치 역량이 커지면 지역의 이미지와 평가도 달라지는데 역할분장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일동의 경우 과거,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 대부분을 행정이 맡아서 했다면 6년 전부터는 주민들이 TF팀을 만들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스스로 했다.

행정의 역할이 없어져서 문제가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시야를 넓혀 주민들이 접근하기 힘든 부분의 행정적인 지원을 고민하고 수월하게 연결해준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축제는 3-4천명이 모이는 풍성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정치인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마을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좋은 사례가 됐다. 신뢰가 생기면서, 각자 알아서 풀어가던 방식을 벗어나 서로 소통하고 의견을 보태 결정하게 되었고 평가할만한 결과물도 많다.

식물원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처음부터 참여하게 하는 성과도 냈고 마을을 안고 있는 성태산성의 복원에도 주민을 첫째로 모시고 일자리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일동청소년문화의집 앞마당에 청소년을 위한 버스킹 공연장을 뚝딱 만들어줬고, 안산성호중학교 입구에 있는 공원에 자전거 주차장도 만들었다. 이는 중학교의 요청을 듣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일동주민자치회는 행정복지센터, 정치권과 머리를 맞대고 주민의 민원을 절대 놓치지 않는 네트워크와 추진력을 가지게 됐다. 민원은 민원으로 해결하고 진짜 예산이 필요한 것들은 의제로 제안한다. 문제는 민원과 의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벼이 결정하는 행정의 접근이다. 주민의 관심과 참여로 만들어내는 소중한 의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잃는 게 많다. 애써 만들어냈는데 없어지는 사업을 두고 다시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주민들이 많고 정성스레 포장하고 문서로 만든 주민들의 사기도 꺾인다. 오죽하면 참여예산이 아니라 참고예산이라고 자조하겠는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지난 번, 체육문화센터 공간의 명칭을 주민들의 공모로 정하자고 제안 드렸다. 주민이 사용할 공간의 이름을 주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내서 정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설 위·수탁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위·수탁은 주민자치회의 주요 업무이고 이는 조례에 근거한다. 주민들의 쉼터이자 녹지공원인 행정복지센터 옆 공간을 내주고 위탁업체인 안산도시공사가 운영하게 되는 경우 주민들의 처지가 초라하다. 사용할 때마다 신청서를 써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수탁을 하게 해달라고 하니 사례가 없단다. 사례는 만드는 것이지 과거에 없었다고 불가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주민들에게 맡기면 자기들만 쓰게 되어 문제라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결론을 미리 내리는 것. 이 또한 주민을 무시하는 것으로 들려 받아들이기 힘들다.

주민들의 공간을 빼앗아 시유지(市有地)화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주민자치회를 하겠다면서 주민들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묵살하는 것으로 상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민관 논의의 테이블을 만들어 다른 지역 사례도 조사해보고 일이 되는 쪽으로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 능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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