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마을 구자도씨의 이장 도전기(상)
수룡마을 구자도씨의 이장 도전기(상)
  • 안산뉴스
  • 승인 2021.08.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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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안산시민)

경기 북부 수룡마을에 사는 내 친구 구자도씨는 은행 지점장 출신이다. 태생은 경상남도 진양, ‘찢어지게’ 가난하여 진학할 엄두초자 낼 수 없는 집안 형편을 숙명처럼 몸에 감고 태어난 백성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몸에 가졌을 적에 동쪽 하늘에서 큰 빛줄기를 봤다고 하는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모친의 태몽 설화를 고스란히 신앙처럼 믿고 열심히 노력한 덕에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물이나마 먹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 여의도 금융가까지 진입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던 인물이다.

그는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자 즉시 나 금융인으로서 대한민국의 1인자가 되리라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 말이 허언이 아닐 만큼 냉철하고 단호한 머리를 가졌고 따뜻한 휴머니즘마저 가슴에 담겨져 성공한 직장인으로서 가져져야 할 덕목을 갖춘 사람이다. 또한 명석한 사람이 놓치기 쉬운 부지런함까지 겸비해서 지적 탐구로부터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확장성도 전혀 손색이 없고 그 연장선에서 ‘방구 깨나 뀌시는’ 명사들과도 교분하는 등 금융1인자는 아니더라도 상층부 진입은 무난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그의 은행 생활은 지금부터 5년 전 서울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함으로써 마감됐다. 무엇이 유능한 이 금융인을 중도 하차케 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청소년재단 대표로 있을 당시 그가 직접 써서 벽에 걸리게 해준 ‘奇正相生’이라는 족자 속에서 중도 하차 내력의 일부나마 찾으려 노력한다. 그가 좋아한다는 글귀 기정상생의 의미는 원래 전법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현대적으로 의역해서 의사결정 시 단호함도 중요하지만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쯤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한다. 그의 생애에서 어떤 단호함이 차고 모자랐는지, 어떤 유연함이 결핍 또는 과잉이었는지 금융계 상층부로 진입못한 그의 인생역정에 묻은 깊은 사연의 풀 버전은 호흡이 길 것인바 차후에 청해보기로 한다.

여기서 잠깐 그의 성향을 말하자면 태생이나 직업으로 보아 우직한 보수가 되어야 할 것 같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름대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대들고 일신우일신을 추구하는 철학을 가졌으며 서민들 또는 그들의 임금 같은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그런데 술 한 잔 하면서 들어보면 또 못 말리는 관료의 진수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구획이 뭣이 중하겠는가. 구자도씨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런 스텐스로 살지 않는가.

이 분이 지난 7월 자신이 사는 수룡마을 이장(里長) 선거에 도전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장도 선거 하나’라고 말한다. 사실 나도 이장을 선거로 뽑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친구야 나 결심했다”가 전화통에서 들려오는 첫 음성. “부동산 투기라도 하기로 했냐 먼 놈의 결심” 하고 내가 되물었다. “아니 그건 속물들이 하는 기고, 나가기로 했다 ‘영광스러운 수룡마을 이장 선거에’”, “……….”

이렇게 시작하여 약 한 시간 정도 장황하게 늘어놓은 그의 이장 출마의 변은 이렇다. 마을이 낙후되어 있고 단합이 잘 안된다, 마을에 쓰레기 수거함조차 없다, 어르신들 체육공원 정비가 시급하다, 버스 배차시간이 너무 길다 등 할 일이 많은데 잘 안 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추진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간략히 줄이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외곽에서 부인과 함께 어린이집만 운영하는 줄 알았더니 마을 사정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그래도 못다 했는지 그 이튿날 문자로 내게 보내온 추가 켓치프레이즈는 다음과 같다. ‘이번에 이장을 바꿔야 한다.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 ‘옛날 사람들은 변화된 모습을 수용하기 어렵다’, ‘혈기왕성한 내가 나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이 사람의 이장 출마 프로젝트가 궁금하고 흥미롭기 짝이 없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 “구 선생 계신가요^^.” “전데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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