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마을 박재구씨의 이장 도전기(중)
수룡마을 박재구씨의 이장 도전기(중)
  • 안산뉴스
  • 승인 2021.09.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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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민)

수룡리 간이역 파전집에서 만난 친구는 앉자마자 “내가 아인나 이 동네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서 큰 결단을 내렸다 아이가.” “결단이고 멋이고 은행 지점장님께서 먼 이장이여 시장이나 국회의원으로 가야제.”, “무신 소리 이 동네를 기똥차게 변화시킬라몬 이장해야한다.”

내 물음과 그가 한 말을 섞어 정리하면 이렇다. 경기 동북부에 위치한 이 마을은 거의 원주민이고 약 30% 정도가 외부 입주민으로 구성되어있다. 농토가 넓어 조상 대대로 지주들도 많고 최근에는 서울 사람들이 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마을이다. 그가 5년 전 와서 보니 한 사람이 10년 이장 자리에 있었고 그 이전에도 자리를 넘겨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나 외지 사람에게는 철저히 배타적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마을이 정서적으로 나누어진 느낌이었는데 그는 이런 지역 정서를 바로잡고 마을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장기집권’과 ‘지역감정’을 끊겠다는 것인데 이 불멸의 ‘도시형 두 선거 괴물’은 여기까지 들어와 있었다. 지역감정이 남부지방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수 이북 소도시에서도 버젓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에 호남 출신인 나는 입맛 씁쓸했다.

여기 또 있다.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지방색을 없애자는 불타는 정의감 외에 그가 이장을 하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을 유지급으로 신분 상승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때문이다. 영남 출신 박재구 씨는 부인과 함께 외곽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을 둘러본다고 찾아와 실없는 소리나 해대는 관련자들, 지방에서 왔냐면서 약간의 텃세를 부리며 아래위로 쳐다보는 마을 중견 세력들은 일단 놔두자.

미국 아들이 지어준 양옥집에서 거드름 피우며 사는 최씨 영감님, 부잣집 사모님으로 출가한 딸이 사준 외제 세단을 몰고 면사무소 네거리에 자주 출몰하는 감색 양복의 김 회장 내외, 대대로 내려온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청마루에 장롱 만한 노래방 기기 놓고 사는 천석지기 윤 생원 등 이들이 마을의 좌장들이다.

또 있다. 불어닥친 ‘개발 붐’을 타고 벼락부자가 된 ‘땅부자 정씨’ 가문의 큰아들은 평소에는 서울에서 머물다가 때만 되면 마을에 나타난다. 괜히 준 것도 없이 미울 법도 하지만 마을을 위해 적당히 도로도 넓혀주고 농구장도 만들어주고 어버이날이면 노인들에게 영양제 주사를 놔드린 후 쇠고기 넓적다리를 상자로 돌리는 선심을 쓰는 그가 마을 사람들은 싫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정 회장님’ 결정이면 대개 따른다.

아무튼 최씨 영감님을 비롯한 마을의 의사결정권을 독과점하는 이런 도농복합 토호 집단이 그에게는 짜증날 정도로 신경쓰이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경만 쓰였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이장이 되어 이들과 동일한 반열에 앉아 마을 일을 결정하고 대접받고 싶은 욕망은 그런 부러움에서 나왔으리다. 소외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 이것이 박재구씨 이장 도전에 감추어진 속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편 나는 이번 기회로 무지했던 상식 하나를 일깨웠는데 ‘이장’에 대한 정의, 권한, 역할 등은 이렇다. 이장(里長)은 지방행정구역 리(里)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으로서 우선 월 기십만원의 수당과 보너스,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는다.

체육대회 같은 행사의 상석에 앉을 수도 있고 혼사집이나 김장 나눔에 가면 주민들로부터 ‘아이쿠 이장님’으로 호칭될 수 있다. 잦은 회의에 참석하고 자질구레한 일이 많다 하더라도 노느니 장독깨며 논다고 어린이집 운영하면서 이장 자리 하나쯤 꿰차는 것은 폼도 나고 면 출입깨나 할 수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이만한 벼슬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조선 초기 영의정 한명회가 조카를 죽인 세조의 만행을 물타기하기 위해 단행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지방행정 개혁’의 일환으로 설치한 ‘리(里)의 장(長)’이 영의정 가신지 우금 530년 지난 2021년 여름 내 친구 박재구씨에게 사활을 건 서바이벌전이 되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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