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마을 박재구씨의 이장 도전기
수룡마을 박재구씨의 이장 도전기
  • 안산뉴스
  • 승인 2021.09.1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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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민)

친구는 분명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그 의지 위에 탑재된 ‘이장 소망’은 간절해보였다. 나는 먼저 이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서 서류로 정리하라고 했다. 나도 과거 이런 일에 자원봉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 이슈를 선점하여 공약을 정하고 그것을 구체화하여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이 선거 사업의 알파 베타에 속한다는 것은 경험이 아니더라도 상식이다. 수룡리 이장 뽑는 일이 나라에서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잔치의 일환이지만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선 주민들 민원, 특히 주부들의 민원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정리하여 보여준 대 주민 ‘약속’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①스마트하게 마을회관 단장 ②작은도서관 운영 ③체육공원 조성 ④생활쓰레기함 설치 ⑤마을버스 배차시간 단축 ⑥개발위원회 상시 운영 등등.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민들을 만나서 주먹 악수도 하고 장터에 가서 오뎅도 맛있게 먹고 특히 학교 동문이 있으면 그런 사람을 발굴해서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르신들과 부녀회장을 찾아뵙고 넙죽 절하고 이장을 하려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드린 후 무조건 비비라고 했다. 갈 적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법과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박카스는 한 통 들고 가는 것 잊지 말 것이며 좋은 모습은 아니니 결례가 되더라도 절대로 막걸리 잔은 권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말라고 했다.

다변은 금물이지만 지나친 겸손도 안된다. 너스레도 떨고 다 알고 있는 동네 현안이더라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도 하라고 했다. 어른들은 물어봐주면 좋아하신다. 은행 출신이라고 시중금리 이야기를 해서 유식한 체 하면 안 된다. 나대다가 싸가지로 오인받으면 폭망이다. 속마음을 겸손하고 진솔하게 그러나 당차게 보여야 한다. 나는 이렇게 친구에게 순전히 ‘입으로 하는 좋은 소리’만 골라 말로 섬으로 다 해주었다. 그리고 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함께 가지 못한다. 여기서부터는 너 혼자 가야 한다. 선전하라고 말한 후 열차를 타고 돌아왔다,

이장 어떻게 되었는가. 떨어졌다. 소신 있고 맞춤형 조언까지 받았고 그리고 열심히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후보 중 3등으로 낙선했다. 그것도 형편없는 차이로. 한때 여의도 금융계 상층부를 노렸던 재원이 인구 200명도 안 되는 동네 이장 한번 해 볼라고 나섰다가 참패한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을 유지급이 되고 싶은 욕망’과 ‘주민께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 두 개를 묶어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결정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다. 수룡마을 귀촌 5년 차인 영남 출신 이방인에게 지역 장벽과 토착 집단의 카르텔은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었을까. 봉사하고픈 의욕과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 현실과의 간극 사이로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며칠 후 막걸리집에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눈물 보이더니 나중에는 그 울음을 웃음과 섞었다. 그걸 보고 나도 웃을 뻔했다. 어찌 그가 울고 웃는 속내를 모르겠는가만은, 반남 박씨 가문에 먹칠한 것이 슬퍼서 울었고 안 해도 될 일을 괜히 이장 나간다고 설레발이 떨다가 ○만 밟았다, 그래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라는 말은 아니 했으면 좋겠다.

친구야 ‘선택’은 화려한 경력으로 이력서를 채우면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은행 지점장을 했어도 잘 안 먹혀 들어가는 것이 선거란다. 그것들은 비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미하단다. 현실적으로 능력과 선택은 자주 동행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말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가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심해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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