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이야기하는 4월
희망을 이야기하는 4월
  • 안산뉴스
  • 승인 2022.04.1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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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영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창문 너머 풍경이 평화롭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고, 목련꽃은 만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흐드러졌다. 벚꽃의 꽃망울은 한껏 부풀어 올라와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어김없이 봄은 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엘리엇(Eliot)은 이 계절을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를 통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그 첫 소절은 이렇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뿌리로 먹여 살렸다.”

시인은 ‘소생’이라는 현상을 봄과 겨울이라는 비유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시가 발표된 1922년에 엘리엇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필자에게는 시인의 4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오늘날 우리의 4월이 왜 잔인한가를 비춰보는 것만으로 이 시의 창작성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의 4월은 어떠했는가? 봄은 싱그러움과 즐거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4.3사건이 있었다. 1960년 4월 19일은 민주주의 운동인 4.19혁명이 있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안산의 잊을 수 없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도 있었다. 2019년 4월 4일 축구장 740개에 달하는 면적을 태운 강원도 고성 산불도 기억이 난다. 이러한 사건사고를 보면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라 할 수 있다. 그 뿐인가! 4월은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울하고 우울한 단어들로 표현이 된다. 정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말에 공감될 수 밖에 없다.

봄은 천문학적으로 춘분(春分)과 하지(夏至) 사이다. 사계절 중 봄이 유난히 밝고 긍정적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겨울이라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여린 생명들이 움트는 소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은 새로움과 시작을 의미한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고, 젊다라는 청춘(靑春)의 ‘춘’ 자도 봄을 뜻하는 것과 같이 희망과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껏 역사적 사실 위에 잔인했던 4월의 암울했던 시간 속에 우리는 민주화 시민운동인 4. 19혁명을 담아냈고, 안전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던 의식은 생명, 인간존중, 안전에 대한 중요한 각인과 의지를 담아냈다. 우리들은 힘겨웠던 순간을 꿋꿋하게 버텨 왔고, 기대가 좌절로 바뀌는 역경 속에서도 잘 이겨내 왔다. 이러한 노력만으로도 이 계절을 밝고, 힘찬 희망을 담은 계절로 묘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의지는 4월 한달의 기념일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식목일을 비롯하여 임시정부수립일, 장애인의 날, 과학의 날, 지구의 날, 정보통신의 날, 법의 날, 저작권의 날, 충무공탄신일 등 국민 의식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관심을 조성하는 많은 기념일들이 함께 하는 달이다.

우리의 4월은 희망의 계절이다. 아름다운 꽃들은 어떠한 무력도 없이 사람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마음을 설레이게 하며, 생동하게 한다. 마틴 루터 킹의 ‘희망이 세상을 움직인다.’라는 시가 떠오른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수확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으며 이익을 거둘 희망이 없다면 상인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안산 시민들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4월이 봄볕의 따스함처럼 스며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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