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당당한 사업가가 되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업가가 되겠습니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22.08.10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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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현 ㈜바우엔디앤씨 대표이사

<주요프로필>

-1982년 1월 20일 출생

-안양예고 졸업

-호주 뉴잉글랜드대학교 학사 졸업

-호주 시드니대학교 건축대학원 석사 졸업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박사 예비심사 통과

-(주)노빌리스교육 대표이사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사업가가 있다. 1982년생 이우현 ㈜바우엔디앤씨 대표이사다.

고교 졸업 후 호주로 유학을 다녀온 이 대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이어오며 현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 예비심사를 이미 마친 상태다.

이 대표는 안양예고 졸업 후 호주 유학 시절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왔고 현재의 ㈜노빌리스교육 유학사업을 시작으로 최근 부동산 분야의 ㈜바우엔디앤씨까지 창업했다.

독립유공자 이종환 증조할아버지와 민주화유공자 이원수 할아버지, 부모의 정의로운 정신을 물려받아 세상을 이롭게 하고 가족과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물로 살아가겠다는 이 대표는 사업 성공을 통해 할머니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이웃을 살피겠다는 의지다.

사업가로서 가져야 할 덕목 중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살아가야 하고 당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이 대표다.

이웃과 함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삶을 꿈꾸고 일상에서 작게나마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대표를 현장 인터뷰했다.

-독립유공자 자손으로 알고 있다.

“가족 이야기라서 조금 쑥스럽지만 맞습니다. 증조할아버지 함자가 이종환 독립 유공자이십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시고 3.1운동을 주도하시다가 총살을 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증조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남산도서관을 오가시며 시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국가가 밝혀내야 할 일을 개인이 해낸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할머니의 열정과 집념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원수 할아버지도 민주화유공자이십니다. 1972년 아버지가 고3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3선개헌 독재정치에 반대하시다가 경찰에 연행된 지 나흘 만에 돌아가셨답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학을 다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안양예고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호주 뉴잉글랜드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언론·미디어)를 전공해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호주 유학 시절 복막염으로 대수술을 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었고 한국에 귀국해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디자인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호주는 오페라하우스가 유명한 나라인데 세부적으로 건축음향을 전공했고 재즈클래식 앨범 제작 등의 프로덕션 작업도 했습니다.

유학 당시 학부 시절에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지만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는 당시 옷가게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었습니다. 공부할 때 와이프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정이 많이 들어 석사 과정 졸업 후 2012년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해외에서 학습하고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가져던 일이 현재를 살아가는 저에게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공학박사 학위 심사를 마치고 마무리 과정에 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음향을 전공하며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30세 나이에 한국에 들어오자 서울사이버대학에서 특강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학교측에서 관련학과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고 강의에 재미를 느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영상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박사 과정 연구논문과 예비심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년 2월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의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데.

“회사명이 ㈜노빌리스교육과 ㈜노빌리스교육그룹 2개의 법인입니다. 한마디로 유학 교육사업입니다.

노빌리스 교육사업은 2015년 어학원으로 시작해 기업출강, 유학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가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주춤하면서 ㈜노빌리스교육그룹은 대표였던 호주인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 중에서 유학사업 만을 따로 분리시켜 ㈜노빌리스교육을 만들어 중국 유학생들의 한국 유치 사업을 위주로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주 유학생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사업을 하면서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국내외 청소년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큽니다.”

-안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고 사회공헌도 하고 싶고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해오고 있는 교육사업이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음향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졸업했기 때문에 건축 분야가 그렇게 생소한 분야는 아니라고 봅니다.

부동산 분야의 ㈜바우엔디앤씨 회사를 동고동락하는 오기환 대표와 힘을 합쳐서 최근 공동으로 설립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사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부동산은 응용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토지와 건물부터 시작해 부동산 가격과 투자가치 등으로 연계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을 알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토지와 건물 등을 매입하고 트렌드에 맞춰 자금 운용으로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고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꾸며 살아가도록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투명하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싶습니다. 하나하나 열심히 배워가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주변에 녹여낼 것입니다.”

-사업가로 살면서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저의 멘토가 할머니입니다. 물론 부모님도 계시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 때는 몰랐지만 주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할머니가 매우 현명하셨던 분인 것 같습니다. 집안의 독립유공자를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벅찹니다.

할머니 살아 생전 저에게 남겨준 어록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 “나 죽었다고 생각하고 해봐라.”, “돈을 얼마나 버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마라.”, “말이 많으면 쓸만한 말이 없다.”, “뿌린대로 거둔다. 한 만큼 돌려받는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핸드폰에 할머니 어록을 정리해 놓고 매일 한 번씩 되새깁니다. 할머니 영향으로 청소년기 호주 유학 시절 일탈 행위를 해보지 않았습니다.

경제 자유를 얻으면 할머니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증조할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유공자 훈장을 받아 이름이 남아있지만 내조하느라 수고하신 할머니의 존재가 미미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증조할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우셨지만 아버지도 검찰공무원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직한 삶을 살았다고 여깁니다.

거창한 구호는 아니지만 ‘정직’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불의를 보면 타협하지 못합니다. 인간 누구나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직은 사업가로서도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삶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좌우명은 ‘착하게 살자’입니다. 스스로가 착하게 살면 주변에도 착한 사람이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자신에게도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습니다.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똑바로 서야 합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착하게 산다는 의미가 약하고 멍청한 것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고 여자 보호할 줄 알고 약자를 도와줄 줄 아는 그런 삶입니다.

가장 용감한 것이 가장 착한 것입니다. 이제 5살인 아들 ‘이로운’에게도 마음속에 심어주려고 수시로 얘기합니다.”

-개인적인 비전이나 꿈이 궁금하다.

“할머니 존함이 ‘박남분’입니다. 제대로 돈을 벌어 저에게 정신유산을 물려주신 할머니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일입니다.

대기업 부자들처럼은 아니지만 사업으로 성공하는 만큼이라도 재단법인을 설립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아동, 불우 이웃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밖에서의 사회공헌과 함께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있는 와이프와 아들을 위한 가족 공헌은 기본입니다. 와이프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가 되는 것도 한 가지입니다.

가족을 위하고 할머니 이름의 재단 설립과 함께 사업 성공으로 뒷받침이 될 경우 보다 넓은 세상에서 ‘이우현’을 만나 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평생학습은 어떻게 하나.

“인간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노력하는 스타일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인터넷 검색도 수시로 하지만 논문을 많이 읽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리해 놓은 논문을 보노라면 풀리지 않는 문제도 쉽게 해결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문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호주 유학에 이어 박사 과정도 공부한 것 같습니다. 논문 외에도 책을 통해서 자기계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거기에다가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속에 내 스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항상 뭐든지 배우려고 애씁니다.”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사는 할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가족력인지 모르겠는데 어려서부터 이웃을 살피고 기부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옵니다. 20대 초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성금 기탁은 물론 각종 기념일마다 수시로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호주 유학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도 플랜(PLLAN)에 2년 남짓 매월 49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와이프와 13년 연애하고 2018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저의 선행을 지켜봐 왔던 와이프가 만남 10주년 기념으로 유니세프에 기부해서 놀라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 와이프와 특정기념일에 기부하자고 의기투합해 현재까지 잊지 않고 아들 첫돌 기념으로 유니세프에 기부한데 이어 그 이후 현재까지 아들 이름으로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한다면.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입니다. 백범일지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김구 선생님의 저서이기도 하고 증조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였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해방 이후 신탁통치 반대와 자주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국가를 위한 결기를 따라갈 후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의 자주독립과 함께 개인도 자주 독립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경제관념을 정확하게 알게 해 줬습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데일카네기’와 ‘링컨’ 등의 자서전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우현 대표가 꿈꾸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정의롭지 못한 사회로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각종 제도 속에서 관행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더라도 해선 안 될 일을 잘 압니다. 정의가 무엇인지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머릿속으로는 이해한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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