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가치관과 신념
지도자의 가치관과 신념
  • 안산뉴스
  • 승인 2022.08.23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혜숙 안산뉴스 논설위원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위령탑 앞에서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다. 세계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했다. 이것은 유럽의 평화와 통합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시작이었으며, 그의 사과는 서유럽과 동유럽을 움직여 베를린 협정과 동유럽 국교의 정상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한 지도자의 인식과 가치관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과거 우리 대통령들의 철학과 신념은 어떠했는가.

김영삼 대통령은 독재정권 이후 출범한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라 칭했다. 따라서 기존 독재정권에 맞선 투쟁 경력을 기반으로 세계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OECD에 가입했다. 또한 그는 북핵위기에 상당히 주도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보수적인 대북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과거에 북한 간첩에 의해 사망하여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개인적 정서에서도 비롯됐다. 그는 대북 문제에 대해 ‘우리 겨레를 위협하는 북핵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며 통일 문제를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는 북핵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양자협정 방식에 주도적으로 비판하였고 제네바 합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햇볕정책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대북 3원칙을 제안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통일정책’이라는 표현 대신 ‘대북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기존 지도자들이 주장하던 단일통일국가라는 목표보다는 남북 간의 관계개선과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이를 위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실시했다. 또한 개성공단을 설립하고 경의선 복구 사업을 추진했고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주의자다. 2002년 6월 미군이 군사훈련 도중 여중생 2명을 치어 사망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미군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이 나자 당시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라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의 일방적인 대외 정책을 비판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비밀리에 이라크에 군사를 파병했음에도 미국이 북핵 대화에 참여하지 않자 양국 관계는 악화됐다. 또한 그는 초기에 동아시아 중심의 FTA 정책을 시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특성상 제조업 위주로 특화된 무역 구조의 영향을 받아 한국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내렸다. 따라서 그는 미국과 FTA 협상을 맺어 지역주의 FTA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다. 성숙한 세계 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삼고 외교정책에서 창조적 실용주의와 포괄적 실리외교를 추구했다. 따라서 2011년 비분쟁지역이던 아랍에미리트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양국 간 군사협력 증진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파병을 강행하며 전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또한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미국과의 동맹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우려해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적극 나섰다. 미국의 동맹인 일본과도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 천황을 방문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정구상을 외교안보정책의 키워드로 제시하며 신뢰 외교를 구상했다. 그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중국에 특사를 보내는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당시에 중국경사론이 대두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화되었지만 사드 배치 문제로 관계가 악화됐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포기를 먼저 할 것을 주장했고 통일대박론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강경정책 노선으로 돌아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드 배치 문제가 대두되면서 친중 반미 정책의 기조를 유지했고 일본과는 위안부와 강제 징용문제 등으로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나아가 WTO와 지소미아 문제로도 심화됐다. 한편 북미 관계의 가교역할에 주력한 결과 싱가폴 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 지도자의 개인적 배경, 사회적 인식 등은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국가뿐이겠는가. 지자체, 기관, 단체 등도 마찬가지다. 차제에 안산시를 책임졌던 단체장들은 어떠했는지 되뇌어보자. 4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지역과 시민을 위해 어떤 철학으로 정책을 펼쳤는지 말이다. 지도자의 가치관과 신념이 지역과 시민의 명운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