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든 문화, 무비판적 선택
스며든 문화, 무비판적 선택
  • 안산뉴스
  • 승인 2022.09.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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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안산뉴스 논설위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9월 8일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권위의 상징이었던 여왕은 1952년에 즉위하여 70여 년 동안 영국인의 자존감이자 정신적 지주이기에 충분했다.

영국은 여왕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약 12일 간 국가 애도의 기간을 정하고 애도일에는 금융 시장을 비롯한 관공서, 은행 등이 문을 닫으며 진행하던 컨퍼런스, 운동경기 나아가 전국철도해운운수 노조파업까지 잠시 중단한다고 한다. 또한 국장의 진행과 영국 총리를 포함한 국내외 주요 인사의 경호·보안을 위해 수조원의 비용을 충당한다고 하니 가히 그 위엄은 가늠할 만하다.

엘리자베스 2세가 70년간 재위했던 관계로 현대에 생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은 처음 영국 왕실의 장례식과 국왕이 즉위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그런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약 9조 원 정도 추정된다고 한다.

국내외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는 이 때에 왕실의 장엄한 전통문화를 고수하기 위해 천문학적 세금을 충당해야 한다니 씁씁하다. 하기야 세계인에게 사랑받던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병자와 약자에게 친절했던 것조차 근엄한 왕실에서는 주의해야 할 덕목이었다고 하니, 영국 왕실의 권위문화가 그 무엇보다 상위개념이었으리라.

이에 영국의 가디언은 “장례식은 국가의 생산성을 급락시킬 수 있고 영국이 기술적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영국 왕실에서 행하는 거대한 장례 및 즉위식은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국제사회 리더로서 시대적 경제난국을 타개할 솔선수범이 필요한 상황에 왕실의 수조 원의 권위적인 장례 문화가 과연 세계시민의 시각에서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한편 1980년대 미국에 이민 온 몽족의 어린아이가 뇌전증으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눈이 위로 놀라가며 정신을 잃곤 했다. 이에 의사가 진단 후 약을 처방했고 매일 투약해야 할 양과 횟수를 알려줬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약을 처방대로 수량을 지키지 않았고 불규칙적으로 두 배를 먹이거나 아예 안 먹이거나 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의사는 그의 부모를 아동학대죄로 신고했다. 그런데 그의 부모가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은 까닭은 ‘악령이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부모는 오히려 낯선 의사와 그가 준 약을 불신한 것이다. 그 사이에 아이는 식물인간이 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 죽음의 원인을 무엇으로 규정지어야 하는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문화적 충돌은 아닌가.

위 두 사례를 보면서 문화에 따른 인식의 차는 결정적 순간에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왕실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장례식과 대관식을 치러야 하니 국민의 혈세가 지출되는 만큼 매사에 절제된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시각과의 차이는 왕실에 속한 그들이 과거 인식되어온 문화가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몽족 소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문화와 몽족의 문화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인식과 삶 속에 스며있어 의식, 무의식속에서 모든 결정에 언제나 작동한다.

안산의 문화는 어떠한가. 산업화에 따른 반월공단의 형성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도시다. 고향을 등지고 일자리 따라 찾아온 낯선 도시이므로 고향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외로움을 달랬고 향우회를 통해 힘을 규합하며 제2의 고향으로 정착시켜 나갔다. 또 유달리 단체와 종교집단이 많은 안산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먹고사는 문제가 다급했기에 자녀교육에 주력할 수 없이 어느덧 30여 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덧 성인이 된 자녀와 세월의 흔적만 남았다. 이것이 안산시민의 보편적 삶의 흐름이고 그 속에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제 IT 시대, 그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스며든 문화가 경쟁력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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