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안산뉴스
  • 승인 2023.01.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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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안산뉴스 논설위원

최근 국내 정치적 핫이슈는 단연 나경원 전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마하느냐의 논쟁이다. 따라서 각 방송사의 사회자는 출연한 패널들에게 나경원 전의원의 출마 여부에 대한 예견을 빠짐없이 묻는다. 가장 흥미로운 대답은 나경원 전의원 자신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이다. 이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대통령이 대한민국 먹거리 창출을 위해 마케팅 외교로 애쓰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권력다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아쉽다. 이에 민주당 인사들은 이 순간을 놓칠세라 불난 집에 더욱 부채질을 하는가 하면, 당내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논리와 수위를 달리하며 논쟁에 뜨겁다.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나경원 전의원의 그 간의 여당 기여도에 따른 자유로운 출마 제재에 대한 비판이고, 또 하나의 의견은 리더자의 정치적 처신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볼 때, 각기 논리에 설득력이 있으나, 문제의 시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비판의 시각에 큰 차이를 보인다. 한편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대학 진학과 취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기회의 평등의 문제 즉, 끊어지는 계층 사다리가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이때에, 홍준표 전대표는 현 사태를 나경원 전의원과 그의 남편의 대법관설을 겨냥하면서 “부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남들은 한 자리도 벅찬 최고 자리에 가겠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금수저 출신의 탐욕으로 비판한다.

일련의 사태를 볼 때 나경원 전의원이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싯점에 내려지는 결정이 이후 정치 행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는 숙고 중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하나, 정치평론가들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며 길어지는 판단까지 리더십의 문제로 제기한다.

필자는 구정 연휴에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책 한권을 접했다. 이 책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사상에 근거해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가의 자질,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정치의 근원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정치 하지마라’고 한 것을 언급하며 이는 정치를 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하며 시작한다. 정치인의 길에는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의 수렁이 존재하고 대부분 정치인들이 이 수렁에 빠져 정치생명을 마감하거나, 설령 이곳에서 빠져나와도 법적인 위험이나 비난을 받아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정치인이 경멸과 분노의 대상이 되어도 어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막스 베버는 정치란 다른 직업과는 달리 매우 특별한 윤리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국가라는 정치 조직체를 운영해야 하는 정치가는 그 수단으로 그것이 권력, 강제력, 합법적 폭력 등 뭐라고 하든 인간의 ‘악마적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베버는 정치가라면 선한 목적을 위해서 때론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하는 운명을 자각해야 하고, 이러한 윤리적 역설을 감당할 자신감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정치인은 사회를 개선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설령 자신의 정의감과 신념에 충돌해도 그 무엇보다 우선시 돼야 한다고 한다. 혹여 이를 실천하다 난관과 저항에 부딪칠 때 환경을 탓하고 타인의 어리석음으로 돌리면서 비열하게 자신을 박해받는 희생자로 묘사한다면, 이 태도야 말로 ‘정치에서 치명적 죄악이라 할 무책임성’이라고 한다. 혹 업적을 남기고 존경받을 생각을 하거나 또는 정치해봐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면, “차라리 소박하게 사람들 간의 형제애를 추구하고 자신의 일상에나 열심히 살라”고 조언한다. 즉 소명의식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베버가 말하는 소명의식은 정치가로서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다. 그 갈등은 정치에 입문하거나 중진이거나 피할 길이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이 필요한데 그 대상이 상대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일 때도 있다. 누구나 정치적 진로 문제에 봉착하면 주변의 지인과 정치적 선·후배, 동지 등의 다양한 조언이 있게 마련이다. 나경원 전의원의 경우 이 시점은 변곡점에 서 있는 게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다수의 국민과 보수 여당을 지지하는 당원들은 그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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