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역사를 알아야 정체성을 압니다”
“지역역사를 알아야 정체성을 압니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19.02.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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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

올해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고종의 인산일(=황제의 장례식)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춰 한반도 전역에서 지식인과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국내외에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체계화, 조직화,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3.1운동은 일제가 물리적인 폭압만으로는 민족의 저항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형식적이나마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안산에서도 3.1운동은 계층을 망라해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고 그 열기는 다른 곳 못지않게 뜨거웠다. 안산의 3.1운동 당시 애국지사 13명을 배출했다. 안산 출신의 애국지사 후손들은 다른 지역과 같이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어려운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다. 안산에서 3.1운동을 기리고 그 업적을 알리는 행사와 활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이런 가운데 안산에서 활동 중인 향토사학자와 학교 교사 등 지역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사연구소’가 ‘청소년을 위한 안산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안산향토사연구소가 2008년 발간한 ‘안산지역 3.1독립만세 운동 연구조사 보고서’를 보완해 중고등학생용으로 발간한 것이다. 2008년과 올해 집필자로 참여했던 원일중학교 역사교사인 신대광 선생을 만나 안산의 3.1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산은 1919년 당시 시흥군에 속해 있었다. 안산지역 3.1운동은 시흥군 수암면, 반월면, 군자면 그리고 당시 부평군였던 대부면에서 1919년 3월말∼4월초에 집중해서 3.1운동이라는 민족적 물결에 동참했다. 당시 인구가 8천명이었던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2천여 명이 참가했고, 6명의 애국지사를 배출했다.

군자면에서는 1천여 명이 참가해 애국지사 4명을 배출했고, 반월면에서는 600명이 참가했다. 대부면에서는 10여명이 참가해 3명의 애국지사를 배출했다. 안산의 3.1운동 역시 장날,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다른 지역과 공통점이다. 장날 장터에서 3.1운동이 전개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감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산의 3.1운동의 특징은 농민계층이 많이 참가했고 행정 말단인 구장(현재 통·이장)이 연락책을 맡았다는 특징이 있다.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운동은 성인 남자 전체가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천여 명이 참가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3.1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인구 8천 명 중 남녀비율을 고려하면 남자가 4천명이고, 그 중 어린아이와 노인을 빼면 절반인 2천명이 성인 남자입니다.

남자 청장년 모두가 참가했다고 볼 수 있죠. 참여율이 높았던 것은 농민들에 대한 일제의 착취가 심했던 지역이라 일제에 대한 반항심이 컸고 일본인 양성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뒤따르지만 일본식 교육을 한 안산공립보통학교의 근대교육 영향으로 의식에 눈을 뜬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독립이 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산의 3.1운동을 계승하는 활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한참 미약하다. 안산시는 제종길 전임 시장이 취임 한 후인 201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안산초등학교에서 3.1운동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 이전까지 광복회원들은 노구를 이끌고 인근 수원시에 가서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육체적 불편보다도 독립운동에 대한 시의 무관심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100주년이 되는 올해 3.1운동 기념식도 민관이 따로따로 3곳에서 각자 개최한다.

“안산시의 고민이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산시가 공업도시로 출발했고, 또 수암면이 안산시에 편입된 것이 1995년도이니 시민들이나 안산시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작년 3.1운동 기념식을 시흥시에 가서 참석했어요.

시흥시는 군자초등학교 안에 3.1운동 기념탑을 건립했고, 야외인 군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가진 뒤 도일시장까지 참석자들이 거리행진을 했습니다. 또 시흥시는 해마다 애국지사 기념비를 생가나 관련 유적지에 세우고 있었습니다. 수암면 3.1운동 애국지사인 김천복 선생 기념비를 시흥시가 건립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럽고 부러웠습니다.”

신대광 선생은 100주년인 올해를 이전 100년과 이후 100년의 분기점이 되는 해로 삼아야 한다며 이후 100년은 3.1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3.1운동 때는 어땠어.‘라고 과거 재현 중심이었다며, 앞으로는 오늘 이 시기에 3.1운동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야 한다”며 “천대받고 차별받던 여성, 기생, 농민들이 3.1운동에 참여한 것은 나라를 되찾고, 땅을 되찾아 나 개인이 잘 사는 것을 넘어 모두가 잘 사는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즉 3.1운동 정신은 평등이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차별이 무엇인지 불평등 요소를 찾아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제2의 3.1운동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2008년 연구보고서보다 자료수집과 취재를 더 해서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했다. 13명의 애국지사 중 6명의 사진(화정동 출신의 김병권 애국지사 사진은 늦게 확인되어 싣지 못함)을 확보했고, 후손들을 인터뷰해 내용을 보완했다. 수형기록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기록이 손실되어 확보하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2008년 연구보고서를 냈을 때 ‘이제 (연구와 조사를)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책을 내면서 추가자료들이 또 나오더군요. 앞으로도 자료를 추가수집하고 3.1운동 기념탑 건립과 3.1운동 기념식 개최 등 계승작업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안산출신 애국지사 후손들의 삶 역시 다른 지역 애국지사 후손들처럼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후손들은 일제의 감시와 옥살이, 동네에서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견디지 못해 산속에서 숨어 살거나 병사, 병고 등으로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삶을 살았거나 살아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지역사연구소는 지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안산지역 역사유적지 답사와 기록을 해오다 2005년 연구자와 역사 교사, 문화관광 해설사 등 10여명이 중심이 되어 지역사연구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오다 몇 해 전에 비영리법인으로 ‘지역사연구소’를 개소했다. 향토사학자인 정진각 선생이 소장을 맡고 있고 카페 회원이 5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꾸준한 지역 답사활동과 출판저작물활동을 통해 ‘공단도시 안산’을 ‘문화역사가 숨 쉬는 안산’으로 인식하도록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신대광 선생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뒤 출판사에 근무하다 2006년 안산중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안산과 인연을 맺은 뒤 2007년부터 원일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수집해 놓은 개인 소장품으로 원일중학교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신대광 선생은 안산학연구원이 진행하는 안산품은학교 내고장 알기의 체험학습 프로그램 개발을 총괄책임자로 참여했다. 내 고장 알기 체험학습프로그램은 중고등학교 교사 모임인 ‘모아재(모아서 함께 재를 넘다)’에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동안 6종 12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안산품은학교가 자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대광 선생은 지역을 알아야 내 삶이 풍요하다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그동안 역사교육은 국가사(國家史), 중앙사(中央史) 중심의 내 이야기가 아닌 왕과 영웅 중심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는 것인데 백성이 소외된 반쪽 역사교육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바꿔가고 행복한 땅으로 만들어 가야 할 지역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유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안산은 특히 토박이가 적어 지역 역사문화 계승에 소홀했고 정체성을 만들지 못했다”며, 지역사회 리더 그룹이 정략적 이해에서 벗어나 제대로 지역의 역사문화를 알아야 지역사랑, 향토사랑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단지 ‘원일중학교 역사 선생’이 아니라 ‘안산의 역사 선생’을 꿈꾼다는 신대광 선생은 단원고에 진학했던 제자 48명 중 40명이 희생당한 4.16 세월호 참사가 자신을 가장 크게 일깨운 사건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는 제가 안산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나 돌아보게 됩니다.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희생된 제자들의 동생과 친구들을 계속해서 만나오고 있습니다”며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는 어른들, 특히 화랑유원지에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아프다”고 말한다.

안산 출신이 아니기에 누구보다도 안산사랑을 크게 말할 수 있다는 신대광 선생의 바람대로 수많은 조상들의 참여와 그 희생으로 이루어 낸 3.1운동을 올바로 계승하고 수백의 어린 생명을 희생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올바로 살려내는 일에 지역사회가 정략적 이해를 벗어날 수 있을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생각해본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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