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민족 대명절, 이번에는 시끌벅적하던 시댁 대신 낯선 병실에서 마음 무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어머니의 요양병원 입원으로 부산에서 사흘을 머물게 되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덟 분이 누운 큰 병실 안에는 코에 관을 꽂고 식사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적막함 속에 의료장비의 기계음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 공간에서는 삶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웃음과 대화는 자취를 감춘 듯했다.
우리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할 뿐 정신은 또렷하시다. 하지만 TV 한 대 없는 병실에 누워계신 모습을 바라보니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곳은 우리 어머니 한 분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언젠가 모두가 마주할 노년의 풍경이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 돌봄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지금, 요양병원은 더 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부모 세대의 현재이자, 곧 자식 세대가 마주할 내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순히 숨을 쉬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기쁨을 함께할 때 비로소 삶의 온기가 깃든다. 그러나 병실 속 어르신들의 모습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돌봄을 명분 삼아, 사실상 ‘격리’의 공간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현재의 요양 시스템은 시설의 불안정성, 전문 인력 부족, 인권 침해 등의 문제점들을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금의 돌봄 체계만으로는 초고령화 사회의 거대한 파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단지 한 개인의 삶에 그치지 않는다. ‘孝’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자화상이자,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함께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박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 중심의 돌봄 환경 전환’이 절실하다. 2024년 정부 시범 사업인 ‘유니트케어’ 사례처럼 소규모의 가정형 요양 환경을 확대하고 직원 1인이 돌보는 인원을 줄여 맞춤형 돌봄이 가능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 생명 유지에 그치지 않고, 어르신 개개인의 존엄과 취향이 존중받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니즈(Needs)를 수용한 기본 문화생활 지원과 여가 활동 보장은 필수다. 내년에 정부에서 사업의 확대를 계획한 만큼 시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둘째, ‘전문성과 서비스 질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의료와 복지, 요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돌봄 체계를 강화하고 전문 의료진과 요양 인력을 확충·교육함으로써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재활과 심리 상담, 사회적 교류를 통해 어르신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사회적 인식 개선과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노년기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단계이며, 어르신들은 존중받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요양 시스템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노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가족의 책임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 과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노년의 삶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어야 한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침대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 어르신들이 존엄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과 이웃, 사회 전체의 손길과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어르신들 또한 여전히 배우고, 웃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명절의 웃음소리가 병실에도 스며들 수 있어야 하고 작은 배움과 나눔이 하루를 밝혀줄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 곁에서 보낸 사흘은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을 남겼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이할 그 시간에 병실이 고독의 공간이 아니라 희망과 따뜻함이 머무는 공간이 되기를, 한국인의 내일이 단순히 오래 사는 삶을 넘어 끝까지 존엄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