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다시 부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그 시절을 다시 부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 안산뉴스
  • 승인 2025.12.24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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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영 안산대학교 교수

이번 주말 ‘응답하라 1988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본방 사수하며 시청했던 나의 인생 드라마가 벌써 10년 전 이야기라는 사실이 쉽게 실감나지 않았다.

1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뀌는 시간이다. 화면 속 배우들 역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번 보았던 드라마의 첫 장면이 시작되자 마음 한편이 먼저 반응했다.

응답하라 1988은 이야기를 ‘보는’ 드라마가 아니라, 각자의 시간을 다시 ‘살아보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덕선의 교복 자율화 장면은 자연스럽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불러왔다. 나 역시 교복 자율화 세대였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던 그 시절은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어설펐다.

무엇이 어른이고, 무엇이 책임인지 아직 잘 몰랐던 나이. 지금 돌아보면 그 어설픔마저도 삶이 허락한 특권 같은 시간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자유와 어설픔은 누군가의 묵묵한 책임 위에서 가능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자주 떠오르는 사람은 아버지다. 은행에 근무하셨던 우리 아빠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돌아오셨다. 드라마 속 아버지들처럼 말수가 많지도, 감정을 자주 드러내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가족의 일상은 늘 그분의 성실함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드라마를 통해서만 그 시절의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 퇴근 후 방 한 켠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듯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 가족을 바라보던 눈빛과 말없는 존재감. ‘응답하라 1988’ 속 아버지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아련하게,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특별하지 않았기에 더 소중했던 시간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랑의 방식들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오랜 시간 ‘인생 드라마’로 남는 이유는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때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웃 간의 정,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하루를 자연스럽게 나누던 일상. 지금의 삶에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가능한 장면들을, 그 시절의 평범한 풍경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응답하라 1988’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우리는 무엇을 잃지 않고 살아왔는지, 또 무엇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지는 않았는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드라마 속 아버지들이 그랬듯, 우리 삶도 결국은 누군가의 묵묵한 책임 위에서 이어진다. 새해에는 더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오늘의 자리를 성실히 지키며, 다음 세대가 조금 덜 불안한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살아가면 충분하다.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보다 삶으로 응답하는 한 해이기를 바란다.

올해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수고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이제 곁에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 시절의 아버지에게, 그때는 하지 못했던 인사를 조용히 건네본다.

“아빠,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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