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내버스를 탔다. 한 정거장을 지나고 버스가 멈췄을 때, 허리가 굽은 한 노인이 천천히 올라탔다.
손에는 오래된 지갑이 들려 있었다. 노인은 익숙한 듯 지갑 안을 뒤적여 구겨진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을 기사님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기사님이 말했다.“현금 안 됩니다.” 노인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기사님은 다시 말했다. “카드 없으시면 내리셔야 해요.” 버스 안은 조용했다. 누구 하나 말을 보태지 않았고, 기사님도 특별히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역시 규정을 설명했을 뿐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노인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돈이 없어서도, 버스를 공짜로 타려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현금으로는 버스를 탈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안내받지 못했을 뿐이다.
버스 문이 닫히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내가 대신 카드를 찍어드릴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현금을 받고 대신 결제해 드렸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잠시 망설이는 사이 그분을 외로이 내려보내고 말았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노인의 씁쓸한 뒷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키오스크 주문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은행 창구는 줄어들고 있으며, 이제 버스마저 현금을 받지 않는다.
효율성과 편리함은 분명 사회를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격차를 기술의 문제로만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고, 앱 설치를 어려워하며, 무인 주문기를 낯설어하는 문제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날 버스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엄의 문제였다.
사회가 바뀌는 동안 누군가는 충분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시대의 규칙을 모른다는 이유로 난처한 사람이 된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이 결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의 변화 속도는 갈수록 가속이 붙고 있다. 지금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조차 몇 년 뒤에는 낯선 시스템 앞에서 머뭇거릴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언젠가 ‘설명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예비 소외계층일지 모른다.
그래서 평생학습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기능적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생학습은 사람을 시대에 억지로 적응시키는 일 이전에, 그 누구도 시대 밖으로 홀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품어주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사회.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사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사회. 어쩌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진정한 교육의 공공성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태도 속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버스 안에서 나는 한 노인을 본 것이 아니라, 조금 일찍 미래에 도착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마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