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교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참교육, 교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안산뉴스
  • 승인 2026.06.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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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영 안산시평생학습관장/안산대 교수

주말 내내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봤다. 틈새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어느새 새벽까지 정주행을 하고 말았다. 극 중에는 교육부의 ‘교권보호국’이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는 특별한 조직이다.

학생의 폭력, 학부모의 갑질, 무책임한 교사와 학교의 방관까지, 현실에서라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 통쾌하게 정리된다. 솔직히 말하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드라마를 다 본 뒤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왜 이 드라마를 보며 시원함을 느꼈던걸까? 아마도 현실의 학교가 그만큼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사회는 교권 문제로 큰 충격에 빠졌다. 한 젊은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전국의 교사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언론은 연일 교권 문제를 다뤘고, 정부는 대책을 발표했으며, 시민들은 함께 분노했다. 이 드라마와 함께 그 사건이 기억났다.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교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기대만큼 밝지 않다. 교사의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오해하는 사례는 여전히 존재하고, 학부모 민원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크다. 학생을 지도하는 것보다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절도 분명 문제는 있었다. 체벌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시대를 그리워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와 교육적 판단마저 모두 부정되는 사회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교육은 본래 불편한 과정이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하고,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해야 한다. 규칙을 가르치고 책임을 배우게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교육 활동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교사를 교육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학교는 학원이 아니고, 학생은 고객이 아니다. 교육은 주문한 결과물을 받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며, 때로는 실패하고 부딪히며 배우는 관계다.

어느 순간 교육의 관계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처럼 변해가고 있다. 학생은 만족해야 하고, 학부모는 납득해야 하며, 교사는 설명해야 한다. 설명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설명만 있고 신뢰가 사라진 교육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교권은 교사를 위한 특권이 아니다. 교사가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교권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학생을 지도하지 못하는 학교, 책임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실, 규칙을 세우지 못하는 교육은 결국 아이들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최근 들어 교권 회복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교권은 법 몇 조를 고친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 교육을 신뢰하는 사회, 학교를 함께 책임지려는 공동체 의식이 함께 만들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 사회가 교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사회가 미래를 어떻게 대하는가와 다르지 않다. 교실은 여전히 미래가 자라는 공간이다. 그 미래를 지키는 일은 교사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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