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주식시장이 들썩인다. “반도체가 호황이니 경제가 살아난다.”고들 한다. 뉴스에서는 반도체산업의 호황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한다.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관련 종목의 주가는 날마다 상승세를 타며 경제지표는 상승곡선을 그린다. 수출은 늘고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의 신호탄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긍정적인 경제 성장률을 전망하고, 언론은 반도체 성과급 이야기로 뜨겁다.
반도체산업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는데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이 늘고 기업실적이 개선되었으며 국가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맞춰 평가절하를 받던 대한민국 주식은 코스피 구천 피 시대를 열었다.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힘을 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숫자만 보면 분명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호황의 온기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관련 대기업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업계 종사자들의 소득은 늘어나 특정 지역의 부동산값이 하루가 다르게 널뛰기하지만 분명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는 좋아진다는데 삶은 나아진 것이 없어 한숨이 깊어지는 사람이 더 많다. 빈 상가가 늘어나고 서민들의 대출은 늘어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다.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와 손님이 줄어든 상인, 월급은 그대인데 물가는 오르고 집값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는 데 정작 자신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뿐인가 소상공인, 은퇴 세대와 비정규직,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은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때 찾아오는 감정이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타인이나 다른 집단과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느낄 때 생긴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일 때 생겨나는 심리적 허기인 것이다. 문제는 이 감정이 단순한 우울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벽이라고 느끼는 순간 사회에 대한 불신과 체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사람들은 절대적 소득보다 상대적인 위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인간은 숫자보다 비교에 더 크게 반응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경제성장은 반드시 필요하고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산업의 호황이 곧 모든 노동자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성장이 한 곳에 집중될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 사람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격차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성장은 숫자가 아닌 체감이어야 한다. 정치권도 경제계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장의 숫자만 강조할수록 성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박탈감도 함께 커진다. 모든 사람이 경제지표의 상승을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 성장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이 퍼질 때 병들고 더욱 위험해진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경쟁 사회에서는 성과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이 특정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코스피 구천 소식이 모두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시대, 성장의 뉴스에 한숨짓는 사람이 오히려 많은 지금,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는 숫자로 성장을 말하지만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다수라면 그 호황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성장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온도다. 성장의 과실이 사회 일부에게 편중될 때 상대적 박탈감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에 대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