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눈-길’ 전시에서 작가들이 바라본 풍경을 따라왔다면, 이제 이 자리에서는 또 다른 눈-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기도 미술관 1층 ‘눈-길’에 적힌 전시 문구다. 필자는 일주일에 1회 미술관 봉사를 한다. 전시 작품 테마가 바뀐 첫날, 전시관에 붙은 문구 하나가 발길을 붙든다. 작품마다 점과 선, 형태와 색이 다르다.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작가의 눈-길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되기도 한다. 같은 사물을 두고 빛이 먼저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림자를 먼저 발견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무엇을 하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식했다. 내 의지와 다르게 좋은 학교, 번듯한 직업, 결혼과 집, 차는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안의 체면, 사회의 기준을 앞세우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때로 용기가 아닌 위험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보이는 것이 중요한 때였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눈-길은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로의 이동을 반증한다.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무엇을 원하는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을까. CCTV가 우리의 움직임을 기록한다면 SNS는 우리의 모습을 저장한다. 한 번 올린 사진과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자신을 노출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또한 선택에 집중하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시선 안에 놓여 있었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그 시대의 중요한 가치였다. 예의와 책임을 가르치는 말이기도 했지만, 개인의 선택을 억압하는 틀이기도 했다. 가족의 시선, 사회의 시선, 카메라의 눈, 온라인의 눈은 타인의 삶과 나를 수시로 비교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어야 한다. 거리와 골목, 아파트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된 CCTV는 안전을 위해 필요한 장치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준다. CCTV의 눈을 피할 수 없는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나를 바라보는 카메라를 모두 끌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 타인의 카메라까지 켜둘 필요가 있을까.
미술관 밖에서 전시장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작품 시선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과 겹쳐 보인다. 미술관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창밖 또 다른 시선은 관람객의 모습까지 작품이 되게 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작품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 자신의 감정선과 옛 기억을 발견하기도 한다.
요즘 세대는 과거보다 자유롭게 삶의 질과 방향을 선택한다. 직업, 결혼, 소비, 인간관계까지도 내게 맞는 리즈를 선택하고 행동함에 주저함이 없다.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 한 장, 짧은 글 하나에도 타인의 반응은 따라다닌다. “좋아요”를 누른 숫자가 관심의 척도가 되고, 댓글이 때로는 평가표가 된다. 그렇다면 요즘 세대 또한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타인의 평가에서 개인의 가치로 이동하고 있는 변화를 세대 차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공동체 안에서 책임과 배려가 더없이 중요해진 요즘, 창밖의 시선이 내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타인의 시선이 내 삶을 결정할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과 잘 보이는 것은 다르다. 예의를 지키는 것과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 또한 다르다. 미술관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속도위반 CCTV를 지나면서 경기도미술관에 전시된 또 다른 ‘눈-길’을 떠올리다 문득, 타인의 눈길은 의식하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차갑고 냉철한 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