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금지어’에는 그 사람의 가장 아픈 곳이 숨어 있다
‘명절 금지어’에는 그 사람의 가장 아픈 곳이 숨어 있다
  • 안산뉴스
  • 승인 2026.09.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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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희 소통문화교육협회·마음다독 대표

명절의 대표적 풍경은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 차량 행렬과 양손 가득 선물 꾸러미를 들고 기차역에 모이는 인파다. 그 풍경은 지루함이나 번잡함보다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과의 재회, 친인척과 북적거림은 고향을 찾는 고단함을 씻어주곤 한다. 그러나 명절이면 ‘명절 증후군’이나 ‘명절 금지어’라는 말도 어김없이 뒤따라온다.

‘명절 금지어’에는 그 사람의 가장 아픈 곳이 숨어 있다. 10대에게는 학업이, 20대에게는 취업이, 30대에게는 결혼이, 4·50대에게는 사회적 위치를 묻는 안부가 때로는 아프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 간 관심의 언어가 어느 순간 비교와 평가의 언어로 비치면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때로는 고향 방문을 미루게 한다.

‘명절 금지어’는 일반적으로 집안의 어른이 청년,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잔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2024년 알바천국이 3,4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4·50대의 중장년층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가 2·30대 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중장년층이 맞이하는 명절은 또 다른 부담이 있다. 2025년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중장년층의 명절 스트레스 요인 중 ‘이번에는 얼마를 해야 하나’라는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경제적 부담만큼 자신의 형편을 확인받는 질문도 편하지 않다. 이는 22년 네이트Q의 조사에서 50대 남성 53%가 직위, 연봉 질문이 싫다는 답변과 맥을 같이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평가받는 일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명절 금지어’는 비단 특정 세대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질문에만 머물지 않는다. 질문의 내용만 달라질 뿐,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고 들키고 싶지 않은 삶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만큼은 내 삶의 자리에서 짊어지고 온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의 품’에서 마음 놓고 웃고 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마음으로 달려간 자리가 비교와 평가로 삶의 고단함에 씁쓸함까지 얹지는 않았으면 한다.

명절은 조상을 섬기고 맛난 음식을 나누며 가족의 정을 나누는 자리다. 시대에 따라 명절을 맞이하는 방법과 풍습은 달라질 수 있다. 점차 차례상을 줄이고, 음식을 간소화하면서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눈다는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이 만나 정을 나누는 시간만큼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

1년에 두 번의 명절만이라도 부모님 품에서 마음 놓고 응석을 부려도 되는 날, 밀린 잠을 푹 자도 되는 날, 다이어트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 날이면 좋겠다. 잘 살고 있는지 확인받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이루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 그런 날이 명절이면 좋겠다. 차가 밀리는 지루함도, 전쟁 같은 티켓팅을 감수하면서도 여전히 찾아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이다. 두 손 가득한 선물보다 하루쯤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시간을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큰 명절 선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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