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헐거워진 고무 패킹 틈새로 물이 새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이런 날은 고개 빳빳하게 쳐들어 천장을 봐도 고개 모로 돌려 딴청을 부려봐도 속수무책이다. 휴지로 꾹꾹 찍어낸 눈가만 연신 따끔거렸다.
추석을 며칠 앞둔 화요일이다. 나들이 겸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았다. 짧은 커트를 한 반백의 할머니와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뒷자리,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머니와 대각선으로 눈이 마주친다. 순간 엄마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어서 많이 먹어.”
“엄마 많이 드세요.”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차려지기 무섭게 할머니의 손이 바쁘다. 접시를 밀고 당긴다. 서로 너무 챙기려다 언성이 살짝 높아지기도 한다. 그 모습마저 한없이 부럽다. 내게 없는 것. 아니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얼굴. 엄마란 단어는 아린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꿋꿋하게 시골집을 지키던 엄마였다. 안부를 물을 때마다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자식을 안심시키던 엄마가 이상 증상을 보인 것이다. 그 일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웃의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 다른 자식은 다 알아보면서 나만 밀쳐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찌할 줄 몰라 울기만 하는 내게 언니들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한 자식 정 떼는 거라고. 큰아들 집으로 기도원으로 병원으로 전전하던 엄마는 딱 지금 내 나이쯤 돌아가셨다. 큰아이 네 살 때 일이니 벌써 삼십 년도 넘은 일이다. 그렇게 엄마는 내 곁을 영영 떠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셈이다. 팔 남매 중 막내딸에게 엄마의 손은 유독 후했다. 언니나 오빠에게 먹을 것을 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엄마의 논리는 명확해서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태어나서부터 젖이 말라 미음으로 근근이 키운 딸이다. 잔병치레도 젖을 물리지 못해서라고 여겼다. 심지어 몸집이 왜소하고 언니들보다 키가 작은 것도 당신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엄마 손저울은 마음이 과하게 얹어졌고 중심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 늘 고장이었다. 자식이 부모 마음 몰라 줄 때 자식 다 필요 없다는 말을 푸념처럼 한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나는 부모가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어설프게 엄마가 된 나는 힘든 시기를 딸과 함께 넘겼다. 학원을 운영할 때 일이다. 갑자기 개인 사정을 들어 결근한 선생님 대신 딸은 고등학교 졸업식 참석을 포기했다. 어차피 졸업식에 불참해도 졸업장을 준다는 논리였다. 그날도 나는 지고 말았다.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고생을 많이 해서였을까. 딸은 철이 빨리 들었다. 무슨 일이든 매사에 혼자 해결하려 들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너무 지나쳐 서운해질 때가 더 많다. 진짜 효도는 엄마 마음 편하게 해주는 거라 해보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배탈이 심하게 난 딸은 꼼짝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마음만 동동거렸다. 고민 끝에 죽을 끓이려는데 있는 밥 먹으면 된다고 말린다. 약을 먹으려면 빈속은 안 된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찌게 끓어오르듯 속이 보글거린다. 종내에는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우라는 악담을 뱉고 말았다. 엄마 마음 몰라주는 딸이 야속해서 던지는 말이지만 금세 후회하는 것 보면 이 또한 진심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 마음을 알았다. 한없이 받기만 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정작 받은 사랑 돌려드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이 철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늘 죄송하고 못 해 드린 것만 마음에 남아 후회스럽다. 내가 그런 것처럼 내 딸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리사랑일지 모른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언제부턴지 내 손저울도 고장이 났다. 자꾸만 마음이 얹어져 한쪽으로 기운다. 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사다 몰래 옷장에 걸어두었다. 옷을 발견한 딸 표정이 불 보듯 그려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 옷이나 사 입지.”
“하여튼 한번을 그냥 안 넘어가지.”
서로 눈을 흘기고 옥신각신하겠지만 그래도 딸은 못 이기는 척 입고 다닐 것이다.
딸은 딸 방식의 사랑 표현이고 나는 내 방식대로 딸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장 난 손저울을 고칠 생각이 없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 딸도 그렇게 자식 키우며 아웅다웅 티격태격 살아갈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