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칼 융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드러내는 얼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페르소나의 어원은 배우가 무대에서 쓰던 ‘가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단순히 거짓된 모습이나 자신을 감추기 위한 가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여러 역할을 맡으며 살아간다.
필자 역시 그렇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각각 다른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무게가 느껴지는 페르소나가 있다. 내게는 현재 맡고 있는 ‘관장’이라는 이름이다.
두 번째 맡은 관장이지만, 관장이 된다고 어느 날 갑자기 더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책이 생겼다고 판단력이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속상하고, 때로는 자신이 없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그럴 때조차 관장이어야 한다. 일이 잘되면 함께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야 한다. 개인적으로 편한 선택과 조직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다를 때도 있다. 그래서 관장이라는 페르소나는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한다.
특히 내가 일하는 곳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이 많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다 보면,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와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한 번 더 생각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에 오히려 먼저 나서야 할 때도 있다. 회의가 끝난 뒤 내가 한 말을 되짚어보고, 결재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놓친 것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본다. 행사가 끝난 뒤 조용해진 공간을 바라보며 ‘오늘은 잘했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아마 이런 순간들이 내가 ‘관장’이라는 페르소나를 가장 실감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역할을 살아가면서 내가 지키고 싶은 기준도 조금씩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정해진 원칙과 절차 안에서 기관을 운영하고, 그 안에서 시민에게 필요한 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특히 평생학습이 프로그램 하나를 운영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누군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배움이 삶의 작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교육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관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페르소나가 오히려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일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내가 원하는가’보다 ‘조직에 필요한가’를 먼저 묻게 된다. 역할 때문에 시작한 행동이 어느 순간 나의 태도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페르소나는 정말 가면일까?
어쩌면 페르소나는 사회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나이자, 아직 내가 되어보지 못한 나를 연습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얻는 수많은 이름과 역할은 언젠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역할도 내 삶의 전부일 수는 없다. 맡은 역할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 모든 이름 너머에 있는 ‘나’를 잃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페르소나를 잘 쓰는 것만큼 잘 벗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출근할 때는 기꺼이 그날의 역할을 입되, 하루가 끝나면 내려놓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오래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연중 가장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내일 또 하루를 시작하며 나에게 주어진 페르소나를 입을 것이다. 때로는 판단하고, 때로는 책임지고, 또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서 나 역시 아직 만나보지 못한 또 다른 나를 조금씩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수많은 역할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