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뿐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벼이 여기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건강이 아닐까. 돈을 모으고 시간은 쪼개 쓰면서도 정작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몸은 무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며 산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과 책임에 신경 쓰면서 몸을 돌보는 일은 언제나 뒷전이다. 그러다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이 일상을 멈춰 세우면 그때 서야 깨닫는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앞에 망연해지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오늘 하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되고 미뤄둔 약속은 다음에 지키면 되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쯤이야 피곤해서 그러려니 한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먼저였다. 그러다 며칠 전 갑작스러운 응급실행은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내게 멈춤이었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병실 한쪽 커튼으로 영역을 가른 그곳에서 기약 없는 입원이 시작되었다. 온몸에 번진 발진과 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는 며칠째 계속되었고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는 몸은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수액과 영양제 해열제를 몸속으로 연신 나르고 있었다. 사십 도를 웃도는 고열이 삼십 팔도로 내렸을 때 풍선처럼 부푼 손을 보며 바늘로 콕 찌르면 바람이 나올 것 같다며 웃는 여유마저 생겼다. 한고비 넘긴 것이다.
갑작스러운 입원은 촘촘하게 짜여진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사소한 불편함은 절실함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낯설고 귀하게 느껴졌다. 내 발로 걷고 마음껏 숨 쉬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 통증 없이 잠드는 일까지 건강할 땐 일상에서 평범해 보였던 사소한 것조차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때 떠오른 말이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는 뜻의 촌음시경(寸陰是競)이다.
건강할 때는 시간이 마냥 주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프고 나니 같은 시간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아낀다는 것이 더 많은 일을 해내거나 하루를 빈틈없이 채우는 일이 아닐 것이다. 빼곡하게 적힌 다이어리를 보면서 소화하던 하루가 무너지는 순간은 단 일 초였다. 성실함으로 포장하고 살았던 시간이 몸이 무너진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촌음시경이 시간을 아끼라는 가르침이라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은 그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다. 병원에서 배운 것은 건강의 소중함만이 아니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삶의 가치를 깨닫는 습관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프고 나서야 멈추는 삶은 너무 늦다. 여기서 전화위복(轉禍爲福 )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화위복은 불행이 저절로 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불행을 계기로 잘못된 삶의 습관을 돌아보고 새로운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위기는 전환의 기회가 된다.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공간인 동시에 삶의 우선순위를 되묻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 타인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한없이 나약해지는 내 모습과도 만난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준비한다며 오늘의 희생을 강요한다.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성취를 위해 지금의 몸과 마음쯤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는 건강을 담보로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몸이 무너지면 계획도 흔들린다. 따라서 건강은 오래 걸어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기본 체력인 셈이다.
갑작스러운 입원은 내게 멈춤을 강요했지만, 그 멈춤은 삶의 방향을 다시 살피게 했다. 건강은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지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챙기는 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촌음시경(寸陰是競)이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쓰러지기 전 걸음을 조절하는 것, 소중한 것을 먼저 지키는 것, 그것이 촌음을 귀하게 쓰는 삶이며, 불행을 교훈으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시작일 것이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오늘 내게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은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간을 아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살아낼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