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인간의 행동이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봤다. 사람의 삶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지에 따라 생각의 방향과 삶의 가능성도 달라진다.
문득 나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 본다. 마음속에 품었던 진짜 꿈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는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고,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건네준 어른은 있었는가.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처럼 일상을 함께하는 어른 외에도 내 삶에 작은 방향을 제시해 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런 어른을 ‘제3의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다.
제3의 어른은 부모나 교사처럼 청소년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책임지는 존재는 아니다. 대신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며 청소년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의사, 기자, 요리사, 운동선수, 예술가, 개발자, 공무원 등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제3의 어른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이 혼자서는 만나기 어려운 세계를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은 인터넷에서 직업을 검색하고 다양한 진로체험에 참여한다. 그러나 정보만으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 삶의 무게까지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그 일을 하는 어른에게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무엇이 어렵고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끼는지’를 직접 듣는 순간, 직업은 단순한 정보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바뀐다.
진로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직업을 경험했느냐만이 아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물론 제3의 어른은 청소년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이 길을 가야 한다”라고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다”라고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주는 사람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청소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만남이 일부 청소년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떤 청소년은 부모의 인맥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다양한 직업인을 만난다. 반면 어떤 청소년은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나 지역적 환경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부모의 사회적 자본에 따라 청소년이 접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달라진다면,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회의 불평등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청소년이 다양한 어른을 만날 수 있도록 공적 기회를 넓혀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청소년이 자유롭게 질문하며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강요하는 어른이 아니라 따뜻한 질문을 건네고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발견하는 어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반드시 거창한 프로그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어른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처음 들어본 직업 이야기 하나가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아볼 수 있겠다’라는 작은 상상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된다. 다양한 어른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단순한 진로체험을 넘어 청소년의 사회적 관계망을 넓히고 스스로 살아갈 세계를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이미 청소년을 기다리는 좋은 어른들이 있다. 학교 울타리 너머 지역사회 곳곳에 자리한 청소년수련관과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자유공간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곳에는 청소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며, 청소년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곁을 지키는 청소년지도사들이 있다.
청소년의 미래를 대신 그려줄 수는 없다. 다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더 다양한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줄 수는 있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이 있는 어른만이 아니다. 세상 곳곳의 다양한 어른을 만날 기회, 그리고 그 만남의 문을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청소년지도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이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제3의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