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찾아온 사람들은 오랜 시간 마음에 쌓아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묻는다. “상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 필자가 가장 많이 해 주는 말이 있다. “지금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마음을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부분 가만히 바라본다. “지금의 진심이 제게 전해지는 것처럼 상대에게도 전해질 겁니다”라고 말해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또 가끔은 이렇게 묻는다. “꼭 말을 해야 알까요?” 말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아줄 거라는 기대가 담긴 질문이다. 필자는 짧게 대답한다. “네. 말을 해야 안답니다” 흔히, 부부가 서로에게 진짜 해 줘야 하는 말을 당연히 알아줄 거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침묵은 오해가 자라는 시간을 준다. 그 오해에 상상의 날개까지 달리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자신의 진짜 마음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올 때, 누군가 그 말속의 마음을 통역해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역할을 너무 잘 보여준 장면이 드라마 ‘굿 파트너’ 16화의 일화다. 드라마 속 남편은 평생 돈 갖다 바치는 ATM 기계였다고 말하고, 아내는 평생 가정부로 살아왔다고 하면서 각자 자기주장만을 내세운다. 이혼 합의금 조정과정에서 부부의 미련을 발견한 변호사들이 변호가 아닌 통역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내가 이혼 합의금으로 20억을 요구하자, “역시, 돈이지, 돈만 받으면 된다 이거지? 나를 돈 버는 기계로만 알지?”라고 하는 남편의 말을 변호사가 “그러니까, 남편의 얘기는 내가 돈 버느라 고생한 거 알아달라는 말씀입니다”라고 통역해 준다. 이에 격한 감정을 앞세운 아내도 “내 자식도 아닌데 나 혼자 키웠다. 당신만 고생해?”라고 하자 변호사는 “혼자 아이 키우고 살림하면서 외로웠다는 말씀입니다”라고 통역해 준다.
변호사들의 통역을 듣던 남편은 결심한 듯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맙고 미안했다. 내가 나가서 일할 수 있었던 거, 다 당신 덕분이야. 내 아들 키워준 것도 너무 고맙고 미안한데 내가 옛날 사람이라서 한 번도 말을 못 했어”라는 마음을 전한다. 아내 역시 자신의 외로움을 털어놓는다. “나도 똑같지 뭐, 당신 고생한 거, 당신 덕분에 잘 산 거 알아. 근데 나는 항상 혼자였다고”, 부부는 이제야 서로에게 진짜 마음을 전했다.
이혼까지 치닫게 한 감정의 밑바닥에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아우성이 있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리곤 한다. 그러는 사이 서운함이 쌓이고, 상대의 행동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서 상대를 무심한 사람, 미운 사람, 그러다가 나쁜 사람으로까지 여기게 된다. 그렇게 상상의 날개를 단 해석이 어느 순간 사실인 것처럼 마음에 자리 잡기도 한다.
‘내가 고생하는 걸 당신은 모르잖아’의 진짜 마음은 ‘나도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아줘’ 하는 말이고, ‘당신 마음대로 다 했잖아’의 말에는 ‘한 번씩은 내 의견도 물어줘’라는 숨겨진 마음이 있다. 우리는 괄호 안의 숨겨진 말을 하지 않으면, 괄호 밖의 말만 주고받으면서 싸우게 된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괄호 밖의 말보다 괄호 안의 진짜 말을 전해야 한다.
내 마음을 먼저 꺼내 보이는 것도 오래된 오해를 풀어가는 시작일 수 있다. 어쩌면 그 사람도 내 마음이 담긴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미안해서, 쑥스러워서 차마 말하지 못한 괄호 안의 마음을 꺼내보는 건 어떤가?

